한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고 또 국가의 운영시스템을 마비시킬 만큼 파장을 던진 메르스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와 어떤 문제점에 봉착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6월18일까지 감염자 200명 이하와 사망자 30명 이하라는 사실은 6년 전 신종플루로 사망 270명, 감염자 76만명에 비해 파괴력이 낮다. 그럼에도 사회·경제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킬 만큼 법석이다.

우리가 한국이 아닌 글로벌화된 지구촌에서 살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미래 학자인 토마스 프레이가 주장한 2015년 현재 인간의 평생 이동거리가 지구를 55바퀴 돌 만큼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2050년이면 지금의 5배인 278배 만큼 넓어진다.

불과 100년 전에만 해도 이동거리는 지금의 1/8에 불과했다. 이동거리가 길어졌다는 소리는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원지가 중동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가 글로벌화되어 있다는 의미다.

메르스가 우리 사회에 던진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도 있다.
첫 번째, 국가나 사회의 리더십 실종이다. 지자체가 중앙정부를 제치고 해결사로 나서겠다고 손을 들었다. 정치적 명분과 소신이라지만 거기서 거기다.

두 번째는 전문가와 직업윤리 실종이다. 전문 의료진은 나서기를 꺼린다. 병원은 환자 진료를 거부한다. 의료진의 프로페셔널리즘 실종과 함께 병원이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은 분명 문제 삼아야 할 직업윤리 실종이다. 이런 현상을 보는 국민은 당연히 사회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임기 대응과 위기관리 모두의 실종이다. 예로부터 한국이 내세웠던 임기응변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 완전히 실종돼 버린 것 같다. 임기응변보다 체계적이어야 할 위기관리는 그동안 우리가 준비해 왔다고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전혀 쓸모없음이 드러났다. 우왕좌왕만 있지 냉정한 대응이나 체계적인 대응시스템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불신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잉대응이 늦장대응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도 있다. 과잉대응이라 주장하면서도 늦장대응과 별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은 믿음을 갖고 싶은데 정부와 정치권은 위로는 고사하고 상대방 비난하기에 바쁘다. 학교 휴업과 외부 행사를 포기하면서도 학원과 종교 행사는 변함없이 가동 중이다. 격리대상자를 찾는데 급급하면서도 메르스 진원지에 파견된 해외건설 근로자는 눈 밖이다.

국민은 이름나고 큰 것만을 쫒아 대형 대학병원 응급실로만 찾는 습관성이 한국형 메르스 전파 통로를 만들어 버렸다. 당장 언론에 뜰 수 있는 말과 선동만 판을 친다.

우리 사회의 속살을 보았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냉정한 제자리 찾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가 믿었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이후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췄다고 했지만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를 통해 무용지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점을 알고 있다면 해결은 가능하다.

임기응변도 위기관리체계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미국이 9·11테러 사태를 통해 정착시킨 사회경제복원시스템(BCP)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재난이라면서도 정작 국민안전처는 뒷전이다. 병원의 이익을 국민건강이나 생명보다 중시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사회복원의 책임을 개인과 가정에 돌리려는 휴업도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국내에서 휴업을 확산시키는 수단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행정편의주적 발상이다. 냉정한 자세와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믿음이 떨어진다 해서 정부와 의료진을 비난하고 개인이나 단체가 나서는 돌발 행동은 버려야 한다. 정부와 의료진에게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협력이 필요한 부문을 요청하는 게 정도다.

정부는 위기관리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불시에 가동성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의료진과 병원은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되살려야 한다. 우리 의료기술로 메르스 확산을 자신 있게 차단시키겠다는 과감한 선언을 하는 리더그룹이 나와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도 재인식해야 한다. 나만 예외로 보려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사회 공동체 인식 부활이 절실하다. 자유는 책임을 담보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 인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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