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요체는 기회균등과 공정경쟁, 공평분배이다. 수십 년간 관행처럼 굳어져온 불공정과 불이익, 편중 등 고질적 악의 사슬을 끊어 ‘출발에서는 기회균등, 과정에서는 공정경쟁, 결과에서는 공평분배(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선진국 입지를 다지기 위한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경제민주화였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힘을 앞세운 갑(甲)의 횡포를 바로 잡지 않고는 역사의 발걸음을 한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그 바탕이었다. 그리고 정권 초기 국정 장악력의 견고성에 비례해 상당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갑질의 횡포가 그 어느 곳보다 극심한 건설업에서는 대한전문건설협회의 노력과 정부 정책이 시대성에 걸맞게 맞물리면서 갑질의 쇠락이 완연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어떤 정책이든 펼치는 힘이 약해지면 그로 인해 이익을 잃었던 세력이 스멀스멀 다시 기어 나오기 마련이다. 정권 초기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던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사라지면서 갑질의 추억을 결코 잊지 못하는 세력들은 이때다 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최근 건설업에서도 갑질 향수병에 빠진 원도급사들의 횡포가 다시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얼마 전 경기지방중소기업청에서 열린 올 상반기 첫 민·관합동 현장점검에서는 원도급사의 갑질 불공정하도급 사례에 대한 하도급업체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고의로 인건비 깍기, 산재처리 책임 떠넘기기, 대금 지연지급 등등 고질적 불공정 관행들이 하도급업체를 눈물짓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전문건설신문 취재에서도 원도급사들이 정산거부 갑질을 서슴지 않으면서 건설경기 회복기에 전문건설업체 도산을 양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두공사 정산거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정상기성도 10~20%씩 정산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한 하청업체 대표가 자살하는 등 정산거부 갑질이 하도급업체를 사지(死地)로 몰아가고 있다.

원도급사의 이행보증 관련 횡포도 전문건설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갑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정기관의 보증서를 특정해 요구하거나, 보증요율을 법정기준이나 업계 관행 이상으로 요구하거나, 공사완료 이후에도 보증이행완료 확인을 거부해 추가자금을 투입하게 하는 등 이행보증 갑질이 도를 넘어 전문건설업체를 한숨짓게 만들고 있다.

하도급 갑질은 시장 질서를 황폐화시키고 부실시공과 그에 따른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차단돼야 마땅하다. 특히 국정 장악력의 여린 고리를 비집고 나오는 갑질은 정권과 국민에 대한 도전으로 무엇보다 악질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가 간헐적이 아닌 지속적인 국정과제여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짝하다 느슨해진 경제민주화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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