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흔치않은 일로 정국이 그만큼 안정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입법부와 행정부의 상호견제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의 방증이기도 하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한 마디씩들 한다. 거부권이란 게 무엇인지, 왜 거부권을 행사하는지,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정치권은 들끓고 있다. 거부권, 대한민국헌법(제53조)상 표현으로는 ‘재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회에서 의결돼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 공포하지 않고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의원내각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구성이 의원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갈등이 커지면, 내각을 불신임하거나 의회를 해산하는 방법을 통해서 다시 한 뿌리를 만든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는 보통(우리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은 사례도 있지만) 의원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별개로 치러진다. 의원내각제처럼 적극적인 견제장치는 둘 수 없다. 결국 서로의 결정에 대해 동의,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법률안 거부권은 그래서 대통령제 하에서 중요한 입법부 견제 수단이 된다. 입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이 입법권이라면, 이를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수단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과 사법부의 위헌법률심사권이다. 위헌법률심사권이야 공포된 법률이 위헌이 아닐까 의심될 때에만 문제가 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상 표현으로 ‘이의(異議)’만 있으면 행사될 수 있다.

공포 자체를 거부하는(그래서 거부권이다), 다시 말해 법률로서 효력을 발휘할 기회를 애초에 봉쇄하는 수단이다. 법률안 의결은 재적의원의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만 찬성하면 되지만, 재의 요구된 법률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법률로서 확정된다. 거부권을 압도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만큼 거부권의 행사도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어도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한다는 말은 많이 생소할 것이다. 거부권만 하더라도 마치 이상한 현상인 양 장안의 이슈가 되곤 하는 현실이다. 현대사를 보더라도 거부권 행사는 흔치 않은 정치적 현상으로 한편으로는 정국이 그만큼 협조적이고 안정됐다는 평가도 되지만 역설적으로는 상호견제의 메카니즘이 작동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우리 헌정사(憲政史)에서 거부권은 지금껏 모두 64회에 걸쳐 행사됐다. 국회법 거부권 행사로 이제 65회가 됐다. 그중 31건은 국회에서 재의결됐고, 30건은 폐기된 바 있다. 최근에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추가하는 내용의 대중교통 육성법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된 2013년의 사례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거부권은 국가가 안정되지 못한 이승만정부 시기에 집중적으로 행사됐고, 점점 줄어들어 제17대 국회 이후로는 기껏해야 그 임기 중 1번에서 2번 정도 행사되고 있다. 제18대 국회에서는 행사사례가 없다.

대통령제의 모국(母國)인 미국의 경우 대통령과 의회가 끊임없는 정책 갈등 속에 의회의 예산안 거부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가 상시적으로 지면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행정부가 독주하던 시대가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중요 정책에 대해 국회와 행정부가 이견이 있으면 사전에 대화나 의견조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필요한 입법 갈등이 발생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이런 노력은 정치를 안정적으로 끌어가는 동시에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률안이 통과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거부권이 행사될 정도의 갈등요소를 가진 법률안의 내용을 국민이 사전에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 거부권이 행사된 국회법은 더 의견이 분분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대통령제를 처음 고안해 낸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의회가 인기영합에 빠지거나 입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것을 많이 우려했다고 한다. 법률안 거부권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국회가 입법권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어떠한 견제를 통해 어떻게 국가정책을 만들어 가는지를 국민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형수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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