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은 원·수급업자간 공정거래 확립해 국민경제 발전 기여를 목적으로 제정됐다. 이런 기조와 달리 법적용 기업을 대폭 줄인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은 재검토돼야 한다”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안전한 통행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호등이다. 도로에서 신호에 따라 운행을 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하고 교통의 편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도심의 혼잡한 도로 상황에서도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호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책당국이 시행하는 정책이나 제도는 해당 산업이나 시장에서 신호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의도하거나 추진하고자 하는 바를 시장에 알리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방향성을 고려해 의사결정과 경제행위를 하게 된다.

신호등은 예측 가능하고 일정한 방향성이 중요한 것처럼 정책도 일관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시장참여자들이 신뢰하기 위해서는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하에서는 시장참여자들이 합리적인 예상을 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여건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고, 해당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된다.

반면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은 시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장참여자들에게 합리적인 예상을 할 수 없게 하고, 왜곡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개연성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서는 다른 정책의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달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령의 적용을 면제하는 원사업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소규모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하도급법령 적용을 면제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건설업의 경우 하도급법령 적용 면제 기준이 시공능력평가액 기준으로 30억원에서 60억원으로 상향된다. 이 경우 2014년 말 기준으로 1만972개 종합건설업체 중 43.7%에 해당하는 5200여 개 종합건설업체가 하도급법령의 적용이 면제된다.

하도급법은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돼 운영되고 있다. 거래당사자 간 대등한 관계를 상정함으로써 사법(私法) 원리를 관철하면서도 상대적 약자인 수급사업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부당특약의 금지와 감액금지 등을 도입해 공법(公法) 정신을 수용해 수급사업자를 보호하고 있다. 최근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익명 제보센터 운영 등 실질적으로 수급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들이 추진됐다.

이런 기조와는 방향성을 달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재론의 여지가 매우 큰 것으로 생각된다. 중소규모의 종합건설업체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그러나 하도급법령의 적용을 면제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설업체들의 가장 큰 경영애로는 수주와 자금조달이기 때문이다. 법령 적용을 면제하는 것이 곧바로 어려운 경영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건설업 생산은 하도급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건설업은 공사를 수주해야만 경영 유지가 가능하다. 하도급 수주경쟁은 극심한 가격경쟁을 보이고 있고,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 비해 월등한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불법 및 부정행위들이 자행되는 사례도 있다. 중소규모 종합건설업체로부터 하도급공사를 수주해야 하는 수급사업자는 전문건설업체 중에서도 영세한 규모일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이들 영세 전문건설업체는 원사업자의 불법 및 부당행위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법령이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중소규모 종합건설업체의 하도급법 적용 면제를 확대하는 이번 개정안이 하도급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방안으로서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도로에서 가장 위험한 신호등은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는 신호등이 아니다. 운전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신호를 주는 신호등이다. 금번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이 예측 불가능한 신호등이 되지 않도록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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