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사현장에서 하도급 전문건설업체 6개가 나가떨어지고 10개 이상의 업체가 직장폐쇄를 할 지경이라면 누가 봐도 정상적인 현장은 아니다. 그런데도 공사 발주자가 엉뚱한 곳을 다니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늘어놓는다면 이 역시 정상적인 행태는 아닐 것이다.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공사현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일대 260만평방미터에 3조2000억원을 들여 1000메가와트 발전기 2기를 설치하는 이 공사에 하도급으로 참여한 전문건설업체 중 3개가 도산으로 사실상 폐업했으며 한 곳은 당좌거래정지, 두 곳은 회생신청을 했다.

모두 업계에서 손가락을 꼽아줄 정도로 업력과 기술을 자랑해온 곳이다. 재무상황도 비교적 튼실했던 이들 전문 업체들이 삼척에서 연달아 펑펑 나자빠진 건 원도급사의 초저가 수주가 근본원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주자인 한국남부발전이 이 발전소 건설에 채택한 ‘순환유동층연소(CFBC)’ 방식이 신기술인 만큼 수주에 앞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는데 원도급업체들은 우선 공사를 따고 보자는 심리에서 그런 절차를 소홀히 한 채 저가로 낙찰받았고, 그 여파가 하도급 업체에 미쳐 무더기 도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발전소 건설의 주 공종인 기계설비업체들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적자투성이인 업체들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조가 정면충돌, 지난 6월 근로자 약 1,900명이 소속된 플랜트 하도급 11개 업체가 직장폐쇄를 하고 노조도 파업에 돌입해 공사가 전면 중단된 탓이다. 플랜트 하도급업체의 직장폐쇄와 노조파업은 4개 업체가 연관됐던 지난해 7월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원도급업체는 벌써 천억 원대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공사가 진행될수록 적자폭은 확대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이 이 지경이면 발주자가 먼저 나서 문제점을 찾아 바로잡는 게 우선일 터인데 발전소 건설본부는 외부 PR에만 신경쓰는 모습이다. 지난달 말 건설본부 고위관계자는 인근 군부대에서 “가족이 면회 오지 않는 사병의 일일 가족이 되겠다”는 소위 ‘Heart to Heart Challenge’라는 이벤트를 출범시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공유가치 창출 차원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공사 현장에서는 공사비 부족에 노조 파업이 겹쳐 쓰러지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공유가치니 사회적 가치니 운운하고 있는 게 실소를 짓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공사 참여 하도급업체들이 별 걱정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책임이 또 있지는 않을 것이다. 

피해 업체들은 산업통상자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저가 발주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탄원서가 효과를 보더라도 미봉책일 뿐 또 다른 현장에서 비슷한 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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