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부터 모든 전자보증의 효력을 없애는 개정 민법은 부실입법의 전형(典型)이다. 온라인(on-line)이 대세인 시대에 역행할 뿐 아니라 막대한 비용과 불편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매년 400만 건이 넘는 온라인 보증을 오프라인으로 처리하는데 드는 추가비용은 2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업과정에 보증이 따르는 건설사 등 기업이 대부분 부담해야만 한다.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드는 시간적 손실과 물리적 불편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1월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민법은 제428조의2(보증의 방식)에서 “보증은 그 의사가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내용과 “다만, 보증의 의사가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경우에는 효력이 없다”는 단서조항을 명기하고 있다. 경솔한 보증계약 체결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이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4일부터 국내 보증기관에서 발급·운영된 전자·인터넷 보증은 모두 효력이 없어진다.

개정 민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김윤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전자보증 무효화’ 단서조항은 당초 법안에는 없었다고 한다. 법안심사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독일 민법을 참고해 ‘보다 신중한 보증계약 체결’을 명분으로 이 내용을 넣을 것을 제안했다. 

여기서 문제는 독일 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일부만 차용한데 있다. 독일은 상법에 ‘영업상 보증’에 대해서는 민법의 해당 내용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기업(기관)의 전자보증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입법 기관들은 베끼기에 급급했을 뿐 국민 편의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무개념을 스스로 드러냈다.

보증업계에 따르면 전문건설공제조합, 서울보증보험, 건설공제조합 등 10개 보증기관이 지난 한 해 발급한 전자·인터넷 보증은 446만 건에 달한다. 이용자는 대부분 기업이다. 내년부터 기업들은 온라인상에서 단 몇 분이면 끝나던 보증을 오프라인으로 받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과 막대한 추가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사회적 비용과 이용자 불편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민법을 개정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단 말인가.

개정 민법 시행까지는 불과 6개월 정도 남아 있다. 법무부도 개정 민법이 아니라 ‘개악(改惡) 민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앞으로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아 고민이 깊다고 한다. 부실입법에 대한 책임이 가볍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 관련법 개정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민 불편과 사회적 비용부담 증가를 막아야 한다. 법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비용도 많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법이 스스로 범법(犯法)을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졸속·부실 입법이 근절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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