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악행(惡行)이 몸에 착 달라붙어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습관화돼 있다. 정부가 나서 근절을 약속하며 엄벌을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무한반복된다. 도대체 우린 언제쯤 이런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70년 건설 산업과 함께해온 불공정 하도급 얘기다. 

이 정부 초기 들불 같았던 경제민주화 기세가 거의 실종 수준으로 수그러들면서 건설 산업을 좀먹어온 불공정 하도급 관행은 여지없이 다시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전문건설사를 상대로 저지르는 불공정 하도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올7월까지 건설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접수된 조정신청 건(件) 가운데 대형건설업체(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30위 이내)가 조정상대인 경우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81.8%나 급증했다. 분쟁원인도 추가공사 대금 미지급, 구두지시 후 대금 미지급, 하도급대금 부당감액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부당특약금지 등 하도급법 법제화 등을 통해 불공정 관행을 근절시키려 노력해온 정부를 사정없이 비웃는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대형건설사들이 저지르는 불공정 행위가 ‘적자 떠넘기기’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해외건설은 물론 원전·발전소·미군기지 건설 등 국내 대형현장에서 수익성 하락에 따른 적자를 협력사를 마구 쥐어짜 만회하려는 식이다.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강도짓이나 다름없는 대형건설업체의 갑질에 협력사들은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정부와 공공기관 등 관급 발주기관의 갑질 문제다. 국내 건설시장에서 관급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수주 기준으로 40%에 이른다고 한다. 발주기관의 낮은 공사비·부당요구·합의 사항 미준수 등 갑질 횡포가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160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관급 발주기관과 불합리한 계약의 구체적 내용으로 △과도한 책임부담(34.7%)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공사비 책정(26.4%) △클레임 제기 권리 제한(19.4%) △적정 수준을 넘은 품질보증 의무(13.9%) 순으로 나타났다. 대형건설사들의 담합이 문제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더 큰 문제는 담합을 조장하는 듯한 현행 관급공사의 거래행태라는 비난 목소리가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가 공사비도 모자라 책임과 의무만 강요하는 발주행태는 고스란히 하도급업체에 전가된다. 결국 건설시장의 처절한 먹이사슬 구조에서 영세한 하도급업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발주기관과 원도급업체의 갑질을 막을 제도 법제화와 끊임없는 감시가 동시에 진행돼야 그나마 하도급업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마침 지난 19일 대형건설사들을 회원사로 둔 대한건설협회가 불공정행위 등 과거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결의했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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