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콩 밭에 가 있는데….”

최근 통화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모 국회의원 보좌관은 “왜 올해 국정감사 자료가 이렇게 허술하냐. 지난해 자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말한 ‘콩 밭’은 국회의원의 지역구다. 

내년 총선거에 정신을 빼앗긴 국회의원들이 치르는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걱정을 키운다. 부실한 자료에 이상한 일정까지 오버랩되면서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감사 의지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대로라면 역대 최악의 국정감사가 될 게 뻔하다.

일정부터 보자. 국토교통위원회는 9월 11일 국토교통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등에서 시작해 10월8일 최종 종합감사를 치른다. 한 달 일정인데, 그런데 중간에 추석 연휴(9월26∼29일)가 떡 하니 껴 있다. 국회의원들은 한 술 더 떠 23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 일정을 비워 버렸다.

왜 이런 요상한 일정표가 나왔을까. 보좌관은 “원래 국정감사는 10월에 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관리에 집중하려고 일정을 무리하게 당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보좌관은 “국정감사 기간에도 틈만 나면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로 달려갈 것”이라며 “민심이 모이는 명절 대목에 미리 내려가 지역구 관리를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요구가 많아 추석 휴무 기간도 길어졌다”고 덧붙였다. 

일정이 기형화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갑자기 빨라진 일정에 준비기간이 줄어 자료조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상시 국정감사 시스템 구축을 운운하긴 했으나 그 동안 여당 원내대표 사퇴 사건, 야당 계파 논란 등의 정치싸움에만 골몰했던 국회의원들이 평소에 충분한 감사 자료를 확보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 논리와 지역구 관리가 우선이니 보좌진도 국정감사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맹탕’이 되면 국정감사가 국정의 통제장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책감사는 가능할까. 답은 당연히 모두 ‘노’(No)다.

국민의 배신감은 또 어쩔 텐가. 국회의원에게는 지역구와 차기 당선이 최고의 목표겠지만 국민은 그러라고 그들에게 당선증을 허락하지 않았다. 민생을 돌보라고 보낸 국회다. 가뜩이나 작금의 우리 경제는 일본식 장기침체로 가느냐 마느냐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중에는 특히나 민생에 직결된 현안이 많다. 부동산만 하더라도 분양 열기 과열과 이에 따른 공급과잉 공포가 날로 커진다. 현 정부 들어 계속된 저금리 정책 때문에 폭발 직전까지 간 가계부채 문제는 또 어떤가.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금리인상도 조만간 현실화할 분위기다.

올해 상반기 건설업계의 최대 현안인 ‘소규모 복합공사’ 적용 범위 문제 또한 해결 기미가 없다. 국토부는 전문건설업계와 종합건설업계 양쪽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당부한다.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다. 지금이라도 인식의 전환을 이루시라. 국정감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마지 못해 치러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연례 행사가 아니라 헌법으로부터 위임받은 국회의원의 숭고한 권한이자 의무임을 명심하시라. 군사정권 하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했던 국정감사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이번 국정감사가 총선을 앞두고 당신들의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각고의 노력을 해도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게 국정감사다. 부디 정신 차리시라.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