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예가에 낮은 낙찰률로 더 낮아진 금액으로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선진국 수준의 품질·성능의 공공인프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건 마술이다. 근본문제를 분석하고 혁신안을 내놓아야 할 때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흔히 나타나는 게 포트홀이나 땜질 마감이다. 너무나 자주 보기 때문에 대부분 무관심하다. 포트홀로 인해 사고가 생겨야 문제시한다. 국내 도로는 한마디로 ‘반창고도로’다. 도심지를 통과하는 지하철공사나 지하관로 매설공사가 차량과 보행객 통행을 방해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도심지 지하철의 진출입구가 좁아 화재나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혼잡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지 두려워하는 사람은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밖에 없다. 하수관로나 전기관로 등 지하매설물 공사때 차단망을 제대로 설치하거나 보행객이나 차량통행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보호망을 심각하게 보는 국민도 별로 없다.

최근 우리보다 개인소득이 높은 유럽 4개국 8개 도시를 방문했다. 3300km를 도로로 이동하면서 국내와 같은 반창고도로를 본 기억이 없다. 방문한 도시의 공사 현장에 설치된 보행객과 차량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차단장치는 물론 임시로 설치한 도로 덮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국내와 비교하게 된다.

도로 건설과 유지관리를 위한 설계기준과 시공기준이 국내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예단이다. 설계기준과 시공기준이 높을수록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발견한 지하매설물 개선공사 현장도 국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용과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국민들이 대가를 지불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국내와 유럽 국가의 공공인프라 품질과 성능 차이는 설계와 시공기준 차이며 이 차이만큼 돈과 시간이 더 소요될 것임은 틀림없다. 소득차이보다 품질과 성능에서 더 큰 격차가 날 것이라는 확신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인식이다. 경제력 규모는 세계 15위다. 압축 경제성장으로 인해 개인소득이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국가다.

국민의 눈높이는 소득수준 이상으로 높아졌다. 국내 공공인프라는 대부분 소득수준이 1만 달러 이전에 공급됐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공인프라의 설계 및 시공기준은 1970년대 후반에 제정된 것들이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소득수준 5만 달러 이상에 맞춰져 있다. 국민의 기댓값을 지금의 공공인프라가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공사 중 안전사고는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다고 질타한다. 완성품의 품질과 성능 저하는 당연히 부실공사 때문이라 주장한다. 도로 배수시설 불량이나 보도블록 불량을 부실공사로 내몬다. 그러면서 예정가격 대비 낙찰률은 낮을수록 국고를 절감했다 주장한다. 품셈에 따라 원가로 산정된 예정가격이 선진국 수준의 품질과 성능 수준에 준할 만큼 충분한지에 대한 검토가 없다.

예정가격을 그대로 투입해도 공공인프라의 품질과 성능이 50년간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답변할 기관이나 전문가가 없다. 낮은 예정가격에 낮은 낙찰률로 더 낮아진 금액으로 공사 중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선진국 수준의 품질과 성능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건 마술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혁신방안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

공공인프라 품질과 성능을 방치한 대표적 국가로 미국을 꼽는다. 미국토목학회가 2013년 기준 공공인프라의 안전등급을 ‘D’로 평가했다. 공공인프라의 품질과 성능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3조6000억 달러(한화 약 4000조원)로 추정했다. 방치할 경우 매년 추정예산이 25%씩 증가할 것이라 경고했다. 오죽하면 미국인이 지불해야 할 의료비보다 인프라 복원비가 더 큰 부담이라 질타했다. 방치함으로 인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더 높아졌다.

국내 공공인프라의 품질과 성능도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노후화됐다. 빈발하는 도로함몰이나 상수도파열 사고가 노후화가 주원인일 정도로 심각해졌다. 포트홀을 땜질해 반창고도로를 만들거나 노후관로를 교체하는 방법으로는 공공인프라 품질과 성능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 없다.

국내 공공인프라의 품질과 성능, 안전 및 경제수명 등을 소득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혁신정책을 국민들에게 내놓을 때가 됐다. 대가 지불 없이는 기대도 불가능하다. 방치하는 것은 지금의 사용자가 어린 자녀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겨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문가그룹이 선두에 나서서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복남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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