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은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 국가이다. 하지만 전체 산재 발생률은 OECD 평균 이하인 기이한 통계를 갖고 있다. 이는 산재의 80% 이상이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재보험에 가입하고도 산재 처리를 꺼린다. 산재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사고가 났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면 산재율이 높아져 다른 사업 입찰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 바탕에는 PQ(Pre-Qualification,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제도가 도사리고 있다.

산재예방을 촉진하기 위한 PQ제도가 오히려 산재은폐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지적이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부기관이 보고서를 통해 직접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도 국정감사 시정 및 처리결과 평가보고서인 ‘산재은폐에 대한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향’을 통해 PQ의 부작용을 적시했다. 산재가 발생하면 PQ 점수가 떨어지는데 원청이 이를 우려해서 하청이 공상처리 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PQ는 200억원 이상 대형건설공사의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업체의 입찰자격을 미리 심사하는 제도로 1993년 7월부터 도입됐다. 현행법상 교량과 공항, 철도, 지하철, 항만 등 22개 주요 공사는 반드시 PQ를 거쳐 낙찰자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2006년 이전까지는 산업재해가 많은 업체에 벌점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산재은폐가 늘어난다고 해서 현재의 제도처럼 평균 재해율보다 낮은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로 개선됐다.

가산점은 2점까지 인정하다가 2014년 1점으로 줄이고, 예방노력 1점 가산점이 추가됐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현행 제도에서도 다른 업체가 가산점을 받으면 PQ 점수에서 손해를 받게 되므로 공사 수주경쟁이 치열한 건설현장에서 PQ 가산점을 받기위해 산재은폐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PQ제도에서 산업재해율과 관련된 가산점제도를 없애고 중대재해 시 입찰참여 횟수 제한, 응급기록이나 진료기록 활용을 통한 공상처리 예방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사실 공상 처리로 멍드는 것은 하도급 업체들이다. 공상은 치료비와 보상금, 위로금 명목으로 합의금을 주고 사고를 종결짓는 것이다. 공상 처리는 대개 원청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원청사가 하도급 업체 선정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도급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공사현장의 현실이다.

PQ 제도가 남아 있는 한 산재율을 최소한으로 낮춰 가산점을 받으려는 행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도급업체들이 할 수 없이 공상 처리를 하는 악순환도 끝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어떤 제도가 득보다 부작용이 많고, 편법으로 악용된다면 반드시 개선돼야 제2, 제3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사고 예방에 철저히 힘쓰되 만일 사고가 났을 때는 정당하게 처리하는 성실한 업체가 우대받는 방향으로 조속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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