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권이나 정권 프리미엄이라는 것이 있다. 정권을 탄생시킨 지역의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이 정계진출을 한다. 이유는 있다. 정권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보필해야 정책일관성과 추진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4대 권력기관장 중 3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도 모두 대구경북이다. 이번에 임명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대구출신이다. 권력이야 그렇다 치자. 어차피 정치의 영역이니깐. 그런데 정치가 경제까지 넘어온다면?

새정치민주연합 이개호 의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국토교통부가 당초 요청했던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증액규모보다 2조179억원을 늘렸다. 이 중 가장 많이 늘린 곳이 대구경북으로 6633억원이 당초 부처요구안보다 늘어났다. 이어 부산경남이 4500억원이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을 합친 영남 전체로는 1조1133억원이 늘어났다.

이는 전체 SOC에서 증액된 2조179억원의 절반이 넘는다. 서울경기인천을 합친 수도권은 168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고, 호남, 충청, 강원은 2000억원대 증액되는 데 그쳤다. 물론 사업별로 들여다보면 증액이 불가피했던 사업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권의 지지지역에 과도하게 정부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가 상승도 영남이 뚜렷해 보인다. 올해 부동산 가격상승의 ‘핫플레이스’는 단연 대구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대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10.48%에 달했다. 전국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 4.33%의 2배가 훌쩍 넘는다. 지난해(9.82%)에 이어 연속으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인 3분기만 따로 떼 지자체별로 세분화해 봐도 다를 바 없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3분기 아파트매매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대구 달서구(3.89%)다. 2위가 경북 경산시(3.27%)다. 3위는 대구 수성구(3.25%). 5위는 경북 영천시(3.02%)다. 4위인 제주 서귀포시(3.20%)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대구·경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매가 상승 1위인 달서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시절 지역구고, 2위 경북 경산시는 친박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의 현 지역구다. 그러니 뒷말이 나온다.

과거에는 정권을 잡으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희생하자”는 얘기가 곧잘 들렸다. 권력기관에 동향을 임명하거나, 출신지역에 국가예산을 배정할 때는 여론의 눈치도 봤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달라졌다. 노골적인 인사에, 노골적인 지원이 빈번해졌다. 취직도 어렵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서 체면을 차릴 입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다. 특정 정권에 쏠린 인사와 개발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모래알처럼 사라져 버린다. 능력을 넘어서는 비이상적인 개발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지도 못한다. 억지로 일군 산업단지는 텅텅 비고, 사통팔달로 뚫어놓은 도로는 빨대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면 편애를 받았던 만큼 박탈감도 심해지고, 견제도 심해진다. 무엇보다 매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우리도 정권 잡아 지역발전 시켜 보자”는 주장은 선거를 과열시킬 게 뻔하다. 정권을 갖고 있는 지역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타 지역은 뺏기 위해 극심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영남정권이 들어섰더니 호남이 발전하고, 호남이 정권을 잡았더니 영남이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극심했던 당파를 물리치고 인재를 두루 뽑아 국가균형발전을 꾀했던 300년 전 영조의 지혜가 그립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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