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기반으로 시작해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도 기본 원리로 받아들였으며, 최근에는 점차 복잡해지고 익명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거래안전의 보호’ 역시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설공사 계약 역시 이 같은 민법의 지도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거래안전의 보호’를 담보하는 수단으로 신용평가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공공계약의 기본이 되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제정된 계약예규에는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PQ), 적격심사를 불문하고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해 반영하고 있는데 평가 요소 중 하나로 신용평가등급확인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PQ기준에 따르면 ‘경영상태 부문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업무를 영위하는 신용정보업자가 평가한 회사채 또는 기업어음, 기업신용평가등급으로 심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격심사기준 역시 이 같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심사기준일 이전에 평가한 유효기간 내에 있는 회사채, 기업어음, 기업의 신용평가등급 중 가장 최근의 등급에 따라 점수를 부여한다’고 좀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신용평가제도는 형태와 기준을 달리할 뿐 국내 대기업들도 유사한 제도를 통해 계약상대방의 경영상태와 신인도를 평가하고 있다.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순기능 역시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기업들에게는 이 같은 신용등급확인서 발급 비용이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본 의원실이 신용정보업계와 건설업계 등의 사정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30만~50만원이 들어가는 신용평가등급확인서를 조달청과 대기업에 연 평균 10회 이상 제공하고 있으며, 신용평가회사 간 동일한 신용평가등급확인서인데도 불구하고 2~4개 업체로부터 평가 받아 등급확인서를 제출하고 있어 연간 1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찰기관별·대기업별로 선호하는 신용평가회사의 등급확인서를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소기업은 동일한 등급의 신용평가등급확인서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여러 회사로부터 발급받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나이스디앤비, 나이스평가정보, 서울신용평가정보, 이크레더블, 한국기업데이타 등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5개 신용평가 회사의 기업신용평가 수임 건수는 지난 2014년 13만4551건이었고 올해는 6월까지 벌써 10만4000여건에 이르렀다. 중소기업들이 신용평가에 연간 투입하는 자금이 연간 12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자신이 투자한 특정 신용평가 회사의 평가결과를 제출토록 압력을 행사해 결과적으로 일감을 몰아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건설업체들의 출자로 설립된 전문건설공제조합의 경우 중소 전문건설업체들에게 신용평가회사와 동일한 등급의 신용평가등급확인서를 무료로 발급해 주고 있지만 입찰용으로는 무의미한 실정이다. 조달청과 대기업들이 신용평가업체의 평가등급확인서만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조달청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선택한 1개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등급확인서만 제출토록 자율권을 부여하고, 대기업들은 분야별로 설립된 공제조합이 발행하는 신용등급평가서를 인정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의 젖줄이자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묘안을 찾는데 관련 당사자들의 동참을 촉구한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해남진도완도·기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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