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便法)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라는 뜻이다. 즉,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거나 법의 미비를 적당히 이용, 불법만 피해가며 제 멋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상이 아닌 것은 곧 비정상이라는 의미다. 비정상이 판치는 사회는 그 무원칙성으로 인해 후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본지가 12월7일자 1면과 2면에 걸쳐 보도한 ‘편법발주 기승’ 기사는 우리 건설 산업이 편법에 빠져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건설 산업의 존립기반인 건설산업기본법을 뿌리째 흔드는 편법발주 사례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라는 분노감과 함께 ‘아직 멀었다’라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코앞인데도 건설 산업은 여전히 후진국 형 ‘부조리의 온상’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선 4~5단계 과정을 수행해야 하는 공사를 물품구매로 발주하는 것은 안전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후진성 발주이다. 이 경우 물품 인도조건을 ‘현장설치도’로 하고, 입찰자격을 ‘공사업’으로 제한한 것을 보면 발주기관도 공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는 있다. 그런데도 물품구매로 발주하는 것은 공사업체를 옥죄어 비용을 아껴보자는 알량한 편법 의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건축물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결과적으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여지가 높다. 

전문성 공사를 종합공사로 발주하는 편법은 건설 산업의 업역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자칫 과도한 로비에 의한 건축물 부실의 소지가 높다. 발주기관이 제 입맛대로 전문·종합을 좌지우지 한다면 건설시장의 건전한 상도덕과 합리적인 상거래를 결코 기대할 수 없다. 편식을 하면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이같은 편법은 건설 산업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발주기관의 행정편의 발상도 문제다. ‘슈퍼 갑질’에 안주해온 발주기관이 제 입맛대로 편법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편법의 뜻처럼 ‘간편하고 손쉽게’ 일을 처리하려는 안이한 발상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결코 책임감 있는 태도라 할 수 없다. 발주기관의 편법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방패막이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건산법 등 건설과 계약 관련 법률들이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는 틈새를 편법으로 메꾸는 식이다.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할 방법이 없지만 그 사이 건설 산업은 미래로 전진하기보다는 과거로 역주행을 하게 된다. 물품구매와 공사의 정의가 두루뭉술한 상태가 계속되는 한 정부 과제인 건설 산업의 선진화는 요원한 얘기가 될 것이다.

편법발주는 부실과 불안전, 부조리를 발아시키는 씨앗이나 다름없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건설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올바른 거래 관행을 이룰 수 없다. 선진 건설은 말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 편법이라는 비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정상화 실현으로만 가능하다. 편법발주가 근절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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