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용어 중에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게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가짜 약 효과’다. 환자가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을 먹고도 약을 먹었다는 강한 믿음 때문에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약품이 모자랄 때 많이 활용했다. 플라시보 효과의 원천은 자신감과 긍정적 믿음이다.

집값 상승도 가짜 약과 비슷하다. 부동산은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자산, 즉 ‘내 돈’이 아니다. 부동산은 심리 자산이다. 집값이 오른다 한들 당장 내다 팔지 않으면 내 마음속 통장만 불렸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집값이 오르면 마음이 두둑해진다. 한 번 열릴 지갑이 두 번 열리게 만든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는 내수 경기와 직결돼 있다.

2015년 부동산 시장은 10년 만에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발표된 9·1 대책 등 부동산 활성화 정책의 효과가 이어진 데다 저금리와 전세난이 맞물린 결과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전국 주택 거래량은 110만6000건으로 주택 경기 호황기였던 2006년의 108만2000건을 넘어섰다. 분양 시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전년대비 56.4% 늘어난 총 51만7398채(예정물량 포함)가 분양 시장에 쏟아졌다. 전국 청약경쟁률은 11.76대 1로, 2014년 7.44대 1보다 높았다.

실수요자 위주로 내 집 마련이 늘며 가격은 비교적 안정돼 부동산 시장에 ‘골디락스(높은 성장세에도 물가가 낮게 유지되는 이상적 상황)’가 왔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새해도 그래야 한다. 물론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만 ‘나 홀로 호황’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특히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돼 국내 대출금리가 따라 오를 가능성이 큰 데다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을 대폭 줄이는 가계부채 대책으로 집을 살 때 초기에 투입해야 하는 자금 부담이 커지는 등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비관적 전망은 이르다. 주택 거래가 급격히 위축되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 단서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 이슈가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수도권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재건축 단지는 41단지, 관리처분계획 중 14단지, 이주·철거 진행 중 17단지다. 전국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를 웃돌고 저금리에 따른 월세 전환이 이어져 매매 전환 수요가 여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올해에는 총선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16년 주택 부동산 전망’ 보고서에서 “총선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었지만 하방 억제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은 크다”고 내다봤다. 한 건설사 임원은 “경기 부양에 사활을 건 박근혜 정부가 임기 동안 규제 완화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 만큼 올해에도 분양 예정 물량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 1분기(1~3월)가 시장 위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2월부터 적용되는 가계대출 억제책의 영향력도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리다. 지나친 불안감은 경제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이 있다. 자신감이 있으면 약이 아니라도 병이 치료되는 플라시보 효과의 긍정적 바이러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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