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8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도 판교의 한 빌딩 앞 광장에 나타났다. 대한전문건설협회 등의 산업계가 적극 참여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 운동’ 부스가 세워진 곳이었다.

박 대통령은 서명 부스를 지키고 있던 박용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에게 “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을 통과시켜달라고 했는데도 안 돼서 너무 애가 탔는데, 당사자인 여러분은 심정이 어떠실지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힘을 보태드리려고 이렇게 참가를 하게 됐고 이런 뜻이 국민과 경제인 여러분의 마음에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 입법 촉구를 위한 서명지에 ‘박근혜’ 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현직 대통령이 민간의 서명 운동에 공개적으로 참여한 건 처음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싶다. 박 대통령의 서명을 두고 입법권을 쥔 국회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단순히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튿날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서명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선 서명운동에 동참해서 국민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다”고 설명했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나라 정치는 민생을 발목 잡는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19대 국회는 그중에서도 ‘최악급’인 것 같다.

경제활성화법이 무엇인가.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의 법인데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여와 야의 생각이 다르고, 정부와 국회의 뜻이 어긋난다 하더라도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를 이렇게 외면해서 되는 일인가.

우리 경제는 지금 미증유의 위기상황이다. 중국경제의 침체와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 등 외부환경이 급변했다. 반도체와 조선, 석유화학 등 대표적인 주력산업이 경쟁국의 도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가 ‘급성질환’이라면, 최근의 경제위기는 ‘만성질환’이다”라는 진단도 나온다. 만성질환. 뜨거워져 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 위기감을 못 느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꼴이 지금 딱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다.

상장기업 중에 이자보상배율이 1도 안 되는 기업이 전체의 29.9%에 달한다. 경기전망지수는 이번 1분기까지 내리 3분기 연속 하락세다. 기업 44%가 2016년 경영계획도 못 세웠다. 불확실한 경제여건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데도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할 ‘원샷법’과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정치권은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만 몰두해 치고받고 난리다. 자기들 선거구조차 획정하지 못한 ‘무능과 분열의 극치’ 19대 국회에 경제활성화 입법을 기대한다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을까. 우리 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고 국민의 희망을 앗는 국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이 국회를 대오각성시킬, 아니면 심판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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