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우선 최저가낙찰제는 발주자·사업참여자 모두 손해. 발주자가 사업참여자를 건강하게 세워주어야 튼튼한 시설물을 만들게 된다”

건설(建設)은 “시설물을 새로 만들어 세운다”는 의미이다. ‘튼튼하게’ 세운다는 의미로 健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아쉽게도 사람‘人’ 변이 빠진 建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건설산업이 속전속결에 몰입한 나머지 ‘사람’을 잃어버린 셈이다.

시설물을 새로 세우는 일은 ‘필요한’ 일이지만, 튼튼하고 바르게 세우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다. ‘필요한’ 일은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다.

반면에 ‘필수적인’ 일은 안 하면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배가 출출할 때 간식은 필요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하루 2리터 정도의 수분 섭취는 필요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다.

사람이 건(健)강해야 하듯 시설물도 건강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건설산업이 건강하려면 ‘사람’과 공감하고 ‘사람’을 위해 ‘사람’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건설업계는 부실시공의 주체라는 치명적인 오명을 말끔히 청산하지 못했다. 발주자의 공사비 책정이 원천적으로 과소했든지, 과당경쟁이었든지, 실제로 현장 소장이나 경영진이 부정을 저질렀든지 간에 부실시공은 ‘사람’을 건설의 목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대형 부실공사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 1994~95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부실시공과 안전진단 소홀 및 불법 증축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세우고 설비하는 것’(設)에 앞서 ‘튼튼하고 건강함’(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최저가낙찰제 논란의 본질은, 건설사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참여자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숨 쉴 여지를 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계약은 서로가 함께 숨 쉬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계약 이행의 책임이 일방에게만 전가되고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흐른다면 한 쪽은 여유롭게 숨을 고를 수 있을 지라도 다른 한 쪽은 거친 숨을 몰아쉴 틈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효율임금가설‘에 따르면 사용자는 통상적으로 근로자에게 시장 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실제 임금을 지급한다. 즉 사용자는 현재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제안하더라도 동일한 일을 할 만한 근로자를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근로자가 더욱 건강한 체력으로 일할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근로자가 태만하지 않고 성실성(loyalty)을 발휘하도록 자극하는 유인책이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근로자의 이직이 잦으면 사용자도 신규 채용과 업무 연수의 기회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므로 근로자들의 이직을 예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단기적으로는 최저 시장 임금을 지급하면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나, 장단기를 통합적으로 보면 시장 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효율임금).

최저가낙찰제의 경우처럼 발주자가 예산 절감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은 대가로 사업 참여자들의 성실한 기여도를 기대하지 못할 경우가 지속된다면 사업 참여자들은 사업의 품질을 ‘최저가’ 수준으로 맞추게 될 것이다. 헝그리(hungry) 정신이 한두 번은 가능해도 지속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발주자와 사업 참여자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부메랑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발주자가 사업 참여자들을 건강하게 세워주어야 사업 참여자들이 발주자의 시설물을 튼튼하게 생산해낼 수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이다. 경쟁 회피와 내부자 거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갈등의 종착지는 종사자들이 쇠약해지는 것이다. 건설투자 비중의 하향세, 인력수급의 불균형, 기술혁신의 저조, 업역 및 원하도급 갈등, 입찰 계약 방식의 가변성 등도 난관이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는 건설산업의 본질적인 가치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건강보다 몸매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빠진 건설산업은 껍데기를 세우는 격이다.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서는 껍데기가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은 껍데기만으로는 어림없다. 가정에 곱게 미장한 콘크리트 벽도 필요하지만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야 한다.

1989년 주택 200만호 건설을 착수했을 때에도 인격체로서 ‘사람’을 세우는 건설보다는 철근콘크리트로 ‘수익’과 ‘성과’를 높이는 건설에 집중했다. 그 덕분에 획일화된 주거문화와 생활방식이 주입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철근콘크리트만 있고 고유한 인격체의 사람은 없다. 인스턴트식품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밥솥에는 밥이 있어야 한다.

“시설물을 새로 만들어 세우는 일”(建設)에 사람(人)이 함께 지켜보고 즐거워하고 참여해야 사람도 건강해지고 시설물도 튼튼해진다(健設). 건설(建設)이 건설(健設)로 되어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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