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지나고 서서히 따뜻한 봄볕이 기대되는 때다. 봄은 자고로 희망과 생동의 계절이다. 그런데 올해 2016년, 그런 봄은 매우 더디게 올 것 같다. 2월이 다 끝나가는 지금도 때때로 몰아치는 한파처럼 각종 악재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 연초부터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가 시끄럽다. 북한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도발로 남북 관계가 극한 대치 중이고, 개성공단은 문을 닫았다. 정쟁과 대립만 지속한 정치판은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나 할까 말까 하는 모양이다.

경제는 경제대로 또 사상 ‘최악’을 맞을 태세다. 날로 악화하는 대내외 여건에 올해 들어 첫 달 수출이 18%나 급감하는 등 성장동력을 잃었다. 국가의 동량인 청년실업률은 9.5%로 16년 만에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혹한이 몰아칠 거란 얘기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엄혹한데 정부 정책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경제활력 대책은 재탕, 삼탕에 그치고 ‘한방’이 없다. 대책이 나오면 시장에선 코웃음만 친다. 약발이 안 먹힌다는 얘기다.

이런 때 돈을 돌려야 한다. 돈은 경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피다. 그런데 정책은 거꾸로 간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돈이 돌았던 주택 시장을 보면 안다. 주택 시장에 돌던 돈이 다시 장롱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돈이, 피가 굳으면 시장이, 사람이 죽는다. 또 이미 주택 시장에서의 혈액 응고, ‘혈전’은 시작됐다.

우선 12월 말 현재 미분양 주택수는 총 6만1000여 가구로 지난해 10월 말(3만2000여 가구)에 비해 거의 2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또 올해 1, 2월 신규 아파트 분양 단지 중 절반 가까운 47%가 순위 내 공급 가구수를 채우지 못했다. 1월 주택 매매 거래량도 전년 동월의 80% 수준에 그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장에선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결정타였다고 지목한다. 은행 담보대출을 깐깐하게 한다는 가계부채 대책은 집을 사려던 수요자가 은행을 찾지 않게 한다. 1년 전 주택 매매 거래가 역대 최대치로 뛰어오른 게 낮은 은행의 대출 문턱과 이자 덕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다.

정부의 ‘돈 굳히기’ 실책의 정점은 분양보증심사 강화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경기 용인, 파주, 김포, 화성 등 23곳의 미분양 우려 지역 보증심사를 2차례로 늘렸다. 23곳이라고 발표됐지만, 업계에선 실제 대상지역이 더 된다 한다. 한 건설사 분양 담당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형 건설사가 분양하는 곳곳에서도 보증심사가 1주일 이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분양 양산의 책임을 모면하고픈 국토교통부가 이 같은 조치를 암묵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지시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걱정이다. 대출 규제로 수요자의 구매 심리가 얼어붙은 마당에 이렇게 공급까지 규제하면 올해 주택시장은 ‘꽝’이다. 최근 만난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 시장은 드라이아이스다”라고 했다. 순식간에 얼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장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건 실물이 아니라 ‘심리’다.

정책 당국이 지금 부동산 시장 수요·공급자의 심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꼭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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