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관공사(突貫工事)’를 말할 때면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최악의 난(難)구간이던 500m 남짓의 당재터널(현 옥천 터널) 공사를 준공식에 맞추려면 한 달 만에 끝내야 했다. 현장 실무자들은 공기를 두 달 이상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정주영은 인력을 두 배로 지원하고 낮과 밤 모두 공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두 달짜리 공정표를 만들어서 한 달 만에 끝낸 ‘돌관 정신’의 전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돌관공사는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한달음에 해내는 공사’라는 뜻처럼 원래 불굴의 도전정신의 상징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극복해내고 정해진 기간 내에 공기를 마치는 불굴혼(不屈魂)은 건설 산업 발전의 초석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돌관공사가 어느 때부터인가 하도급업체에 대한 착취 또는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본래의 숭고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최근 한 하도급사가 원도급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청구소송은 돌관공사가 갑(甲)질 수단으로 나쁘게 변질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고인 하도급사는 피고인 종합건설사와 공사금액 132억여 원 규모의 설비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공사기간은 2010년 12월30일부터 2012년 7월31일까지였다. 하지만 선행공정인 기초 토목공사의 지연으로 인해 착공이 4개월 이상 지연돼 2011년 5월경에서야 비로소 본격 공사가 시작됐다. 원고는 피고의 공사기간 준수 요구에 따라 2011년 10월경부터 돌관공사를 실행했고, 그 비용으로 22억여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원고는 돌관공사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2012년 6월23일 피고에게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12년 6월28일 원고에게 공사계약 해지통지를 하는 한편 이행보증보험금도 보증기관에 청구했기에 원고는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법원은 이에 대해 당연히 하도급업체인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했다. 돌관공사비는 물론 공사이행보증금 청구도 취소토록 함으로써 돌관공사의 귀책이 원도급업체에 있음을 확실히 했다. 즉,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돌관공사비를 덤터기 씌우고 이행보증금까지 받아내려는 잘못된 관행에 쐬기를 박은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나온바 있다.

법원이 잇따라 하도급사 돌관공사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돌관공사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하도급업체 착취나 길들이기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부당한 하도급 횡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돌관공사는 본래 취지인 불굴의 도전정신이라는 상징성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건설 산업의 건실한 발전과 공사의 품질과 안전 등이 보장되는 미래를 열 수 있다. 지금은 남을 착취해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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