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운다.’

요새 만나는 건설업계 사람들의 푸념이다. ‘교각살우’라는 더 살벌한 말도 들린다. 가계부채를 억제한다고 시작된 금융당국의 대출규제가 엉뚱하게 중도금, 이주비, 잔금 등을 대출해 주는 집단대출을 틀어 막아버렸다는 원망이다.

건설사들, 특히 지방의 중소 건설사들이 아우성이다. A사의 경우 3월에 805세대를 분양하면서 1110억원의 중도금을 대출받으려 했지만 입찰에 들어온 은행이 하나도 없었다. 부랴부랴 다른 금융권과 접촉에 들어갔지만 좋은 조건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달에 999세대를 분양하는 B사는 1800억원이 필요하지만 접촉한 은행들로부터 ‘신규대출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분양일정 조정을 검토 중이다.

한국주택협회가 이렇게 2015년 10월 금융당국의 집단대출 규제 이후 15개 회원사가 3월 초까지 제출한 집단대출 거부 및 감액 규모를 따져보니 모두 1조8300억원이었다. 또 이 때문에 분양에 차질이 빚어진 아파트는 1만2029세대에 달한다.

물론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집단대출을 막은 일은 없다. 당국은 일관되게 “집단대출 규제는 하지 않는다. 향후에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금융권과 주택 사업현장에선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해라, 말아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 없지만 가계부채 폭증을 막아야 하는 당국의 가이드라인과 시그널을 읽은 금융권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금융권은 손해 볼 일도 없다. 1차 대출이 거부된 건설사가 찾아오면 금리를 높여 선심 쓰듯 돈을 빌려주면 된다. 그러나 1차 납부 기한까지 대출기관을 선정하지 못한 건설사는 수분양자의 중도금 납부를 유예시켜 주면서 부담을 떠안는다. 우여곡절 끝에 대출이 일어나도 높은 금리로 중도금을 빌려야 하는 수분양자는 또 수분양자대로 주택사업자를 탓하며 갈등한다. 주택 수요·공급자만 죽어나는 꼴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원인은 정부의 정책 실패다. 정책 당국의 의지에 의한 저금리와 쉬운 대출은 지난해 뜨겁게 타오른 부동산시장을 떠받친 지렛대였다. 이 지렛대를 발판 삼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내·외 경제여건이 최악으로 치달았음에도 주택시장이 나 홀로 내수를 견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출이 막히고, 금리가 오른다. 경착륙이다. 비행기가 지상에 내릴 때는 경착륙보다 연착륙이 안전하다. 대출규제 강화로 주택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분양 시장에서 모집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미달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집값이 약세로 돌아섰고 거래량도 급감하는 추세다. 이렇게 주택 분양과 거래가 위축되면 내수경기 회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차라리 집단대출 규제를 통한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보다는 부실 심화가 우려되는 사업자금 및 생계비 활용 등의 주택구입 목적 외의 대출을 집중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정부와 금융당국에게 지금, 2016년 3월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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