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기술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석학들은 기술 영역을 넘어 철학과 윤리학의 뿌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개발에 못지않게 미래 충격도 대비해야 한다”

내일은 지방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아침 일찍 드론(Drone)이 배달한 향기로운 원두커피를 마시며 차에 오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자동차가 자율주행으로 알아서 신호 위반 없이 제시간에 회의 장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이고, 그저 운전석에 기대어 보이스북(Voice-Book)이 읽어주는 회의자료를 들으며 차창 밖의 봄기운과 풍경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인공지능과 첨단 로봇 기술의 발달로 멀지 않은 미래에 이런 공상 같은 현실을 직접 겪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독일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1시간 내에 피카소나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모방한 그림을 그리는 컴퓨터 기술을 소개하여 주목받은 바 있다. 컴퓨터가 모방을 넘어 제한적이나마 예술적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예술적 형태의 신경 알고리즘(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이라는 기술의 개발로 종래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예술 분야에서 인간의 지위는 조만간 컴퓨터에게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왠지 인간이 왜소해지는 느낌이 들어 떨떠름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달포 전에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유럽 바둑챔피언을 꺾은 데 이어 세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에게도 4승1패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알파고는 바둑의 룰과 기보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원리로 작동하며, 이미 3000만 건 이상의 기보를 입력해 한 수를 둘 때마다 10만 개의 수를 검토한다고 한다. 사람이 일생을 바쳐도 할 수 없는 것을 알파고는 순식간에 습득하고 습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수를 찾아낸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세기적인 관심을 끈 이유는 이것이 비단 바둑이라는 게임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달은 이미 블루칼라 노동자의 일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대결로 그동안 인간만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고도의 지적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감정변화 없이 시종일관 기계적 분석을 통해 최적의 대안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보며 비인간적인 위압감도 맛보았다. 분야를 확대해 보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많은 일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수술에서 로봇 팔을 이용한 수술이 일반수술보다 더 고가의 서비스가 된 것은 이미 성행 중이다.

법관이 하는 재판은 어떨까? 모든 법령과 판례, 양형기준과 사실관계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결을 내려 주지는 않을까? 이렇게 되면 그 어려운 변호사시험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어 ‘이러다 일자리 다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에 찬 한탄도 나올 법하다. 법제 분야, 회계분야 심지어 문학?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건설·건축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으리라. 모든 종류의 건축물 설계도와 디자인을 조합하여 지형에 맞는 최적의 설계도를 작성하고 로봇이 시공한다면 인간의 기능과 노동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빅데이터의 출현에 이어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영역은 무한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이나 가상현실 체험 등이 바로 현실로 와 닿는다.

인공지능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믿고 싶지만, 더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 무서운 속도로 생활 속으로 파고 들고 있으며 인간만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을 소유하고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감정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인공지능이 모든 데이터를 조합해 스스로 이러한 능력까지 학습할 수 있게 된다면 가히 그 끝은 어디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의 전조가 될지 모르는 인공지능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도전 과제를 인간 스스로 창조해 내고 만 것이다.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이제까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많은 사회적,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하고 희망적인 도구로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제다.

인간이 기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세계의 석학들은 기술의 영역을 넘어 철학과 윤리학의 뿌리, 즉 인문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일 못지않게 인공지능으로 인한 미래의 충격에 대한 대비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기술이 한계를 넘나들수록 그에 걸맞는 심오한 인문학적 해결책을 항상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김형수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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