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이 해운조선업을 겨냥하고 있다. 다음은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건설업계다. 일단 정부는 건설업을 기업 구조조정 최우선 순위인 경기민감업종에서는 제외했고, 설비감축과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되는 과잉공급업종으로 분류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벌었지만 건설업도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 적자 폭이 커지는 기업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체하면 채권단이 됐건, 정부가 됐건, 국민들이 됐건 누군가는 폭탄을 떠안는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방식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주체를 ‘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기업을 살리느냐, 죽이느냐’가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여기에 사장과 직원 등 ‘사람’은 없다.
 
이유는 간명하다. 한국사회는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많은 책임을 기업에 떠넘겨 놨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득분배는 직원의 월급을 통해 해결했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복지의 상당수도 기업이 대신했다. 학자금 지원, 병의원비, 각종 경조사를 사내복지로 충당했다. 일자리만 창출되면 소득불평등, 저복지, 빈곤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이유다. 직장이 사라지면 사회적인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정부가 기를 쓰고 직장을 지키려 했던 이유다.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은 기업이 가져갔다.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은 정부와 채권단의 판단에 따라 살릴 기업과 죽일 기업이 결정된다. 이 판단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조정 때마다 기업주의 엄청난 로비가 들어간다. 언론플레이도 하고 지역사회에도 하소연한다. 구조조정이 지연될 뿐더러 시장에서 퇴출되어야할 기업이 사회적·정치적 역학구조에 따라 살아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조조정의 방식을 바꿔 보자는 주장이 있다. 기업이 아닌 사람을 살리자는 것이다. 구조조정 자금을 기업이 아닌 실업대책에 쓰고, 법제도도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다. 
 
예컨대 실패한 사업주는 유한책임만 물고 추후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미국은 실패한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만 내놓으면 남은 모든 빚이 탕감되는 비소구대출(한 사람이 대출 금액을 다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잡힌 주택만 반납하면, 추가적인 부담을 지지 않는 대출)이 많다. 남은 빚은 금융권이 책임을 진다. 재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기업주도 경쟁력 없는 기업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직원들을 위해서는 실업급여와 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된다. 현 실업급여는 최고 월 130만원 내외를 짧게는 3개월, 길게는 8개월 받는게 전부다. 이래서는 ‘실직은 살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월 300만원을 받았던 덴마크 임금근로자는 실직 2달 뒤 276만원을 받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줄어들지만, 최장 2년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태라면  직원이 실직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기업주와 근로자가 동의하는 상태라면 기업구조 조정도 속도를 내게 된다. 불필요한 인력을 쳐내고, 그래도 안 되는 기업이면 기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런 구상이 너무 이상적일까? 아니다. 법제도는 고치면 되고, 재원은 기업 구조조정에 쓸 수십조원을 끌어오면 된다. 문제는 생각과 의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다. 기업을 살리는 ‘기업복지’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사람복지’를 해보자는 말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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