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자 주요 일간지에 눈길을 끄는 부고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 제1호 도시학자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향년 87세로 별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1970년부터 77년까지 서울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강남 개발을 진두지휘했다는 대목에 눈길이 오래 머무르면서 대한민국 도시계획의 한 시대가 끝났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남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2·3호선, ‘강남 3구’로 불리는 송파구 잠실부지 개발 모두 손 명예교수 재직 시절 이뤄졌다.

강남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 번쯤은 자기 집을 소유하며 살고 싶어하는 이상향이다. 실수요와 투자를 합한 부동산 경기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리트머스 역할을 하며 부동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응축시켜 놓은 곳이기도 하다.

인간이 교육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듯 도시도 도시계획을 통해 성장해 간다. 1960년 중반만 해도 강남은 초가집만 몇 채 있고 채소밭만 무성했던 시골이었다. 알려진 대로 강남 개발의 출발은 인구와 토지 측면에서 포화상태에 이른 강북의 분산이었다. 1966년부터 개발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 지휘 아래 그해 1월 중순 한남대교가 착공됐다. 2년 뒤엔 이 다리와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가 공사에 들어갔고 이 두 사업은 강남 개발의 출발점이 됐다.

개발 초기는 힘겨웠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고 해 정부는 논현동에 공무원 아파트를 지어서라도 이주시키려 했다. 또한 동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에 중구와 종로구에 소재한 명문 사립고를 강남으로 이전시키면서 개발은 빨라졌다.

강남 개발이 거의 마무리된 1979년 강남 땅값은 폭등했다. 강북의 대표적 고급 주택가인 신당동이 3.3㎡당 50만원, 압구정동은 35만원, 신사동은 40만원이었다. 15년간 강북 땅값이 16배 뛸 동안 강남은 1000배 폭등했다.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개발 정보를 활용한 정권의 부정과 복부인의 등장은 강남 개발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시원하게 쭉쭉 넓게 뻗은 도로와 지하철 등 편리한 대중교통망, 풍부한 상업 문화 인프라 등등 거주의 쾌적함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 세기 만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의 매력처럼 전 세계인들을 빨아들이는 최고로 살고 싶은 지역으로 변모했다.

문득 다시 강남 개발과 같은 ‘황금의 도시’가 세워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강남 개발 당시 서울 인구는 300만명으로 지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국내총생산(GDP) 수준도 형편 없어서 아프리카 국가와 함께 빈국으로 소개될 때였다. 지금은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이 넘고 GDP는 세계 11위로 양적 성장이 저물고 있는 시대다.

혹자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 중인 송도와 동탄을 제2의 강남으로 희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엘도라도 강남’을 바라기는 여러 조건에서 무리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리바이벌돼 히트를 친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가사 중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소절이 있다. 이 소절에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강남의 의미를 부여하면 ‘너무 특별한 의미가 있죠’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비가역이 된 강남 개발 시기를 떠올리며 한 도시계획 전문가의 명복을 빈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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