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부산광역시장이 6월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토교통부가 진행 중인 동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에 대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치적, 정무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시장은 신공항을 부산 가덕도에 유치하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약했다.

용역을 발주한 국토부도 아직 결과 보고서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현재 용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정말 모르겠다. 용역 결과가 가덕도가 아닐 경우 수용하지 않겠다고 대놓고 어깃장을 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실망스럽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5년 전인 2011년 신공항 백지화 사태를 부른 극심한 지역갈등 양상이 재발한 것이다. 부산지역과 경남 밀양을 찬성하는 대구·울산·경남·경북지역 간의 갈등과 반목은 용역 결과 발표 예정인 6월 말이 다가올수록 더 심화될 게 뻔하다. 지금의 작태가 더 부끄러운 건, 지난해 1월 영남권 시·도지사 5명은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객관적인 외국 기관에 맡기고 신공항 유치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때 협정을 맺었던 당사자들이 안면을 몰수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 지역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꼴이다.

돌아보니 늘 정치가 문제다. 지난 4·13 총선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신공항 유치를 떠벌리면서 신사협정은 이미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이러려면 뭐하러 나랏돈 들여 외국 기관에 용역을 맡겼는지부터가 개탄스럽다.

국책사업에 정치가 개입하면 안 된다. 이는 5년 전을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진리’다. 당시 정부는 신공항을 백지화하면서 경제성 미흡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어느 한쪽에 공항이 생길 경우 야기될 지역 갈등과 국론 분열의 망령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신공항 논란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배경에서 시작됐다. 신공항은 2006년 참여정부 시절에 공론화됐고,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극심한 지역갈등 끝에 2011년 백지화됐으나, 이듬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다시 신공항 카드를 꺼내들면서 지금의 사태를 예고했다.

원점에서 생각해보자. 동남권 신공항은 2023년 포화 상태에 이르는 김해국제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된 국책 사업이다. 10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가 소요되는 만큼 국가 경쟁력이란 국익의 관점에서 입지가 선정돼야 마땅하다. 정치적 고려나 지역이기주의가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용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내 지역에 공항이 들어와야 한다”고 우기는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특히나 정치권이 가세해 지역 갈등의 화약고에 불을 지르는 행태는 무책임과 포퓰리즘의 극치다.

신공항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공항을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진정 새 공항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관련 지자체장들이 정부와 국토부를 협박하는 대신, 용역 결과에 무조건 승복한다는 서약부터 다시 해야 한다. 제발 국익부터 생각하시길, 정치꾼님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