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8일 대한전문건설협회를 찾았다. 지난해 3월말에 이어 1년3개월여 만이다. 전문건설업계의 ‘벙어리 냉가슴’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는 정 위원장이기에 그의 ‘방문 보따리’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이날 자리는 ‘중견 건설업체와의 간담회’였다. 올해 처음으로 하도급법상 수급사업자로 보호받게 된 중견 전문건설업체들의 애로 및 건의 사항을 공정위원장이 직접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견 전문건설업계 대표들은 이날 △하도급공사 입찰결과 공개제도 도입 △추가공사에 대한 서면 미교부 점검 강화 △저가 하도급대금 결정 관행 개선 △중견 전문건설기업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적용 등 8개 사항을 건의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편법·탈법·꼼수 등 온갖 불법으로 자행되고 있는 불공정 행위 근절 요구였다. 이를 위해 엄정한 법 집행과 지속적인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제기된 애로 및 건의 사항을 적극 검토해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중견 건설업체들이 기업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범적인 공정거래질서 확립과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을 위한 여건 조성이 불공정 관행 근절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방문 때 “억울해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뒷받침 못한 것을 사과하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 발언이며, 단순 뒷받침에서 전반적 여건 조성으로 한 발 진전된 정책방향을 얘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정 위원장은 “익명제보센터 등을 통해 하도급 불공정 행위를 적극적으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익명제보센터 등을 통한 신고가 많이 쌓여야 불공정 하도급 관행에 대한 객관적·보편적 실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엄정한 법집행과 지속적인 제도개선의 근거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의 이 같은 당부는 불공정 행위를 당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고, 정부는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익명제보센터는 공정위가 지난해 3월 불공정 하도급 관행 근절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센터를 구축한 공무원이 ‘2015년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수상할 정도로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익명성 보장에도 불구하고 신고업체가 은연중에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공정위는 익명성 보호와 제3자에 의한 제보자 신원 추정 방지 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나 권리는 스스로 찾는 것이다.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어서는 온전한 권리를 향유할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장의 ‘(불공정 행위) 적극 신고’ 당부는 바로 전문건설업계의 정당한 권리 찾기 권유이다. 공정위의 ‘여건 마련’과 전문건설업계의 ‘자발적 권리 찾기’가 어우러질 때 불공정 행위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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