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유지하는데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건 끔찍한 일이예요. 재앙이죠”

영국 브레멘에 위치한 해운경제물류연구소(ISL)의 한 관계자는 “선박을 수리하는 수리조선소 형태라도 조선을 유지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고개를 크게 저었다. 너무 단호한 도리질에 괜히 멀쑥해졌다. 이같은 답변은 예테보리항만 관계자와 똑같았다.

거대 조선사가 도산한 뒤 그 조선사를 품었던 도시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갖고 두 도시, 독일 브레멘주의 브레머하펜과 스웨덴 예테보리를 최근 찾았다. 

먼저 브레머하펜. 이곳의 조선소들은 1970년대부터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 조선소의 급성장은 카운터 펀치가 됐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1990년후반까지 조선산업을 살리려 애썼다. 엔진, 터빈, 본체 등 독일 북부의 중소형 조선사들을 합병해 초대형 거대 조선소를 만들려 했다. 유럽의 중소형 항공기제작사들을 모아 만든 에어버스가 모델이었다. 이를 통해 크루즈선 등 고가의 특화된 선박을 만들어 다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도 효과가 없었다. 지역 최대 조선소였던 브레머불칸은 1997년 파산했다. 1893년 창업한지 104년 만이었다. 2만명의 직원들도 함께 잘렸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사연도 비슷하다. 예테보리는 1970년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조선지역이었다. 3개의 조선소에서 직간접으로 5만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오일쇼크 이후인 1970년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최대 적수는 일본이었다. 스웨덴 정부도 조선소를 살리려 무진 애를 썼다. 지역 조선소를 국유화하고 하나의 기업으로 합병했다. 이들은 쇄빙선, 페리, 냉동선 등을 만들며 버텼다. 하지만 1989년 결국 문을 닫았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두 도시를 살린 것은 조선업이 아니었다. 브레머하펜은 2004년께 풍력발전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풍력발전은 설비의 규모가 크고, 날개와 모터의 중요성이 큰 조선산업과 매우 닮았다. 연구개발(R&D)를 맡은 국책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중심에 섰고, 관련 기업과 대학이 모였다. 10여년이 지난 2016년 8월. 비어졌던 수출용 선착장에는 풍력발전기에 쓰이는 모터와 날개로 가득찼다. 

예테보리는 2000년부터 시작한 수변개발에서 활로를 찾고 있었다. 옛 조선소 부지를 ‘리버시티’로 개발해 주거와 사무, 과학단지로 바꿨다. 과학단지에는 에릭슨, 볼보, 사브 등 300여 첨단기업이 이미 들어갔고, 중국의 신생스마트폰 기업인 화웨이도 입주를 위해 건물공사가 한창이었다. 조선산업이 남겨둔 도크는 에테보리가 수변도시로 변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

두 조선도시를 보며 떠오른 것이 건설산업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의 발전의 1등공신이었던 건설산업도 조선산업만큼이나 사양산업 취급을 받고 있다. 건설산업은 향후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건설사간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특정분야의 노하우를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두 도시의 사례를 보자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산업으로 전환도 생각해볼 만하다. 신재생에너지, 사물인터넷, 드론, 로봇, 3D프린팅, 바이오헬스 등에 건설산업의 유산이 기여할 부분은 없을까. 설계, 시공, 감리 등의 경험을 살려 중소형 에너지기업, 정보통신기업, 바이오기업 등으로 완전히 변모할 여지를 찾아보자는 얘기다. 발상의 대전환은 역설적이게도 건설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예테보리 항만 관계자의 우정어린 조언은 ‘조선업’을 ‘건설업’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누라와 자식빼고는 다 바꾼다’는 비단 삼성그룹에만 적용되는 경영전략이 아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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