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이익을 추구하는
 건설산업은 철부지 아이다
 큰어른으로 성장하려면
 공정한 경쟁과 공생을 위한
 배려와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언행이나 태도가 나이 든 사람 같아 보이는 아이를 “애늙은이”라고 익살스럽게 부른다. 반면에 어른이지만 사리분별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두고 “철부지 같다”고도 한다. 당사자로서는 둘 다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어른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어린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른으로 자라나야 한다. 그러면 아이가 어른이 됐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언행과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어린아이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하다. 형제끼리도 서로 자기 엄마이고 자기 집이라고 밀쳐대기도 한다. 자립할 힘이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보호하고 힘을 키워 나아가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언행과 태도의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확장돼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울타리를 개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타인과 함께 울타리를 고치거나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건설산업은 아직도 “철부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터키 아나톨리아(Anatolia)지역의 괴베클리 테베 신전은 기원전 9500년경에 건설됐고, 선사시대의 고대 사원들은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 피라미드와 영국의 스톤헨지는 기원전 2500~3000여년 전이었으니 건설 활동은 오랜 경륜을 지닌 ‘큰어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강화도의 고인돌(지석묘)도 기원전 약 20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한반도에 약 4만기가 흩어져 있어서 세계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나이도 1340세를 넘었다. 경력으로만 셈한다면 건설 활동은 어른 중에서도 큰어른인 셈이다. 

우리 건설산업이 철부지처럼 보이는 두 가지 측면만 짚어보자. 하나는 건설업계가 자기중심적인 사업 이익추구에 몰입한 나머지 건설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등한시해 왔다. 40년이 넘도록 동일한 모양과 구조의 공동주택을 점점 더 높은 가격으로 수백만 채를 지어온 일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반성거리가 돼야 한다. 한강 양안의 풍광을 지배하는 거대한 공동주택 단지들은 수익성 상품으로만 지어진 것이지 삶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와 도시의 역사적 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목적의식은 발견하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건설업계가 입낙찰제도 운영에 참여해 온 방식과 태도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지난 20여년간만 하더라도 대기업, 중소기업, 원청업체, 협력업체를 망라하고 운영 중인 입낙찰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아웅다웅해 왔다. 입찰자격심사(PQ), 적격심사제, 최저가낙찰제, 설계시공 일괄/대안 입찰제, 기술제안 입찰제, 주계약자공동도급제도, 종합심사낙찰제 등 현행 제도 모두가 실제로는 제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상의 문제로 인해 이해관계가 대립되면서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경쟁에는 언제나 상대방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경쟁에 몰입하다 보면 공정한 경쟁을 피하거나 경쟁규칙을 바꾸려고 한다. 공공입찰에서 어정쩡한 발주처의 관리 책임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제도 개선은 당연히 이뤄져야겠지만 건설업계가 어른이 되려는 마음가짐과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단언컨대 건설산업은 철부지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집안에 큰어른의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집안과 가족의 분위기는 사뭇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다. 건설산업은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건설산업 종사자 개인도 기업도 산업도 배타적 이기주의를 넘어 타인과 타기업과 타산업과의 ‘관계’에서 아우르는 목소리와 거동을 해야 한다. 형제 간의 싸움에 몰두하는 “철부지” 태를 벗어야 한다. 집안의 큰어른이신 할아버지의 언행은 결코 약삭빠르지는 않지만 식구들을 아우르는 문제해결의 지혜를 제시한다. 건설산업이 수주산업이라는 미명하에 물량 확보에만 매달리는 한, 반찬 투정하는 아이의 수준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 건설산업을 어른으로 이끌어갈 진정한 ‘건설인’의 공감대와 꿋꿋한 동력이 필요하다. 건설산업의 선진화와 융·복합화는 어린아이의 외침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배려심과 책임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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