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나라 살림이 처음으로 400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으로 책정됐다. 정부는 올해보다 3.7%(14조3000억원) 늘어난 400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 2일 국회에 제출했다. 200조원을 돌파한지 12년 만에, 300조원을 넘어선지 6년 만에 ‘예산 400조원’시대가 열리게 됐다.

저성장 고착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확장적으로 재정을 운용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소모적인 복지 예산을 대폭 늘리다 보니 정작 경기를 부양하거나 미래를 기약하는 투자 예산은 갈수록 주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연출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복지 예산은 문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3년 97조원에서 2014년 100조원을 넘어섰으며 내년에는 130조원에 달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조차 “선진국이 되면 복지 예산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선진국이 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먼데 이미 선진국이 다된 양 복지예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꼴이다. 여기에다가 의무적으로 지방으로 내려 보내야 하는 돈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방 예산을 제외하면 전체 예산의 36%인 143조원만 남는다. 이 돈으로 경기 부양과 미래 준비를 모두 해야 한다니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은 올해 6% 줄어든데 이어 내년에는 8.2%나 줄어 21조8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SOC예산은 2009년과 2010년 25조원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줄고 있다. 여기다 산업 예산도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를 부양하거나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 투자하는 예산이 절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날그날 생계유지에 급급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생계형 예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미래 성장 동력의 바탕마련을 위해 인프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도 정면 배치되는 양상으로 예산이 짜여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앞으로도 SOC예산을 계속 줄여나가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에 따라 SOC예산은 2018년 20조3000억원, 2019년 19조3000억원, 2020년 18조5000억원까지 줄어들게 된다. 철도·도로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졌다는 게 이유다.

누차 반복하지만 SOC는 미래세대를 위한 선제적 투자이다. 경기부양과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SOC가 국민 편의·생활환경 개선 등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SOC=복지’라는 공식 또한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고착되는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확장 예산을 짠다면서 SOC예산을 줄이는 것은 경기부양도, 미래 설계도 다 놓치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SOC예산 축소가 잘못된 방향이라는 점을 설명·설득하고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호(號)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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