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폭염과 이를 피하기 위한 휴가철이 끝나면 주택시장은 연례 ‘성수기’를 맞는다. 봄과 가을철에 이사 수요가 많고 또 이때 주택 거래가 급증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사는 성인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추석 연휴가 지날 때 즈음으로 예상됐던 올해 성수기는 예년보다 훨씬 일찍, 또 뜨겁게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 8월25일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주택 시장에 불을 확실히 당겼기 때문이다. 공공택지 공급을 서서히 제한해 주택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게 골자였다. 분양권 전매 제한 등 수요 억제책은 대책에 포함시키지 않고 공급만 줄이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췄다. 정부는 “주택 공급 물량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대책이 발표된 뒤 시장에서는 되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집값 급등과 청약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정부의 8·25 가계부채 대책 이후 새 아파트 청약 단지의 경쟁률은 고공행진했다. 인천 등 수도권의 일부 비인기 지역에서 아직 미분양으로 남아 있던 중대형 아파트까지 급속히 팔리기 시작했다. 내년이 되면 청약 기회가 줄고, 새 아파트를 찾던 수요가 옮겨와 기존 주택시장까지 꿈틀댈 것이라는 전망으로 서둘러 매입에 나선 사람들이 많아서다. 집값은 기존 주택과 새 아파트를 가릴 것 없이 동반 강세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가계부채 관리대책’이라고 타이틀을 달았지만 ‘주택경기 부양책’이 돼버린 꼴이다.

이번 대책은 가계부채 급등세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정부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가계 빚 1000조원 돌파’를 앞두고 나라가 망할 듯 호들갑을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 2분기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1257조3000억원이다. 불과 2년 새 125조7000억원이 더 늘었다. 사실 이 가계부채는, 박근혜 정부 들어 부동산 시장 경기와 동전의 양면 같은 운명을 걷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해 내수 경제를 뒷받침하겠다’는 시그널을 뚜렷이 보냈던 정권 초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책이 가계부채 증가라는 뒤탈을 낳았다.

문제는 이를 보는 시각과 해법이다. 병증의 원인이 명확한데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의 생각이 영 딴 판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분양권 전매 제한과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 등 수요 억제책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부가 “전매 제한이 중도금 등 집단대출을 줄일 수단으로 작동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자칫하면 주택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경착륙’ 할 우려가 있다”고 펄쩍 뛰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가 9월5일 다시 8·25 대책의 시행시기를 일부 앞당기겠다는 내용의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8·25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 과열이 더 뚜렷해졌는데도 이번에도 그 처방 중 가장 약효가 좋다고 알려진 수요를 억제하는 방안은 빠졌다. ‘일관된’ 부양 의지에 올 가을 부동산 시장이 더 불타오를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착륙이 꼭 나쁜 것인가. 비행기가 지상에 내릴 땐 뒷바람이 심하게 불면 ‘쾅’ 하고 바퀴를 처박아야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택 시장의 과열로 인한 뒷바람이 너무 쎄다. 이대로라면 가계부채는 잡을 수 없다. 부채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 미봉책이 아닌 진짜 대책이 무엇인지 박근혜 정부 경제팀의 더 정밀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 그러면서 ‘혹시’ 시장도 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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