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생태계가 건강하려면
 우선 계약문화가 성숙돼야 하고
 둘째는 힘없는 중소기업들이
 법적 분쟁서 억울하지 않도록
 양질의 법적 조력을 받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갤럭시노트7의 제품 불량과 리콜 사태가 시중의 큰 화제다. 일부 불량 배터리가 장착된 노트7이 충전 도중에 폭발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불량률이 100만대 중 24대, 즉 0.0024%로 무시할 만큼 작았음에도, 삼성전자는 고객의 신뢰와 기업 이미지를 더 소중히 여겨 이미 출하된 모든 노트7의 무상교환을 결정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특히 두 가지 점에 눈길이 갔다. 하나는, 수만 개 부품으로 이루어진 최종제품에 불량 부품이 단 한 개만 들어가더라도 그 결과는 제품 전체에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지금 시대는 단일회사 간의 경쟁이 아니라, 완제품 생산업체와 수많은 협력사로 이루어진 기업 생태계(네트워크) 간의 경쟁시대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 한 가지 주목했던 점은, 삼성전자가 불량 배터리 회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으면서 이번 문제는 함께 개발하고 검증했던 자신의 책임이라는 입장을 밝힌 점이다. 해당 부품 회사는 자신의 과오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협력회사의 과오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는 그 이면에는 수많은 협력회사들과 자신을 하나의 ‘단일 공동체’로 생각하는 상생 관점의 사고(思考)의 진전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경제민주화는 거창한 구호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요, 정부 혼자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기업들의 사고의 전환과 그에 따른 행동이 뒤따라야만 지속 가능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촉발하기 위해서 입법부가 관련  법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정부가 그 법을 엄정하고 꾸준하게 집행해 가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상당한 수준의 법과 제도의 보완이 이루어졌고 공정위도 과거의 낡은 관행을 시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기업 윤리와 준법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노력의 결과로서, 불공정한 거래질서가 차츰 바로 잡히고 공정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로 변모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공정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하면서 영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더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계약문화의 성숙이다. 우리 사회는 계약 자유의 원칙이 보장된다. 그 의미는 계약 여부는 자신의 의사에 맡겨져 있지만, 일단 서로 합의해 서명한 것은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한 쪽이 계약 내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계약에서 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서명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이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계약 변경 요구가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일 것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나중에 우려가 현실이 되었을 때 져야 할 부담은 결국 중소기업한테 돌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그런 계약 내용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주장은 행정부나 사법부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하루에 수천, 수만 건의 거래 계약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각각의 건을 법과 제도를 통해 구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의 각별한 노력과 주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는, 법률 조력의 불균형 문제도 해소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우리 법률시장은 대형 로펌에 인재와 정보가 집중되어 있고,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 주 고객이다. 사장 혼자서 1인 다역을 감당해야 할 중소기업 사장이 대기업과 법적 분쟁에 맞닥뜨렸을 때 혼자서 이를 헤쳐 나간다는 것은 너무도 벅찬 일이다. 중소기업들이 보다 저렴하고 양질의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중소기업의 권리 보호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계약하기 전에 법률 리스크를 꼼꼼히 점검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다툰다면 판결 때문에 억울한 중소기업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법률 조력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좋은 대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공정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 조성에 가장 핵심적인 방안은 결국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일 것이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고 좋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우수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특정 업체에 전속되어 끌려 다니기보다는 거래처도 다변화하고 해외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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