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05년께, 건설교통부 기자를 했던 한 선배의 말이다. 집값이 막 뛰어오를 때 그도 집을 구하고 있었다. 과천 기자실에서 우연히 만난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책임지고 집값 잡을 테니 집 사지 마. 지금 사면 무조건 후회야.”

부동산을 책임지는 장관이 자신있게 말하는데 안 믿을 요량 있나. “야 정부에서 집값 무조건 잡는데. 지금은 집 사지말자” 그는 자신있게 아내에게 얘기했다. 그리고는 전세로 남기로 했다. 1년 뒤 어느날 그의 아내가 선언했다. “절대로 관료들 말을 믿지마. 그 사람들이 시장을 알아?” 1년 전 1억8000만원 하던 아파트는 3억원을 훌쩍 넘고 있었다. 집 보고 돌아서면 2000만~3000만원이 오르던 시절이었다.

추 장관이 말한 대책은 8·31부동산 대책이었다. 8·31대책은 역대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강력한 대책 중 하나였다. 부동산 실거래가 과세, 종합부동산세 기준 완화 등을 통해 세금을 듬뿍 올렸고, 수도권 곳곳에 미니신도시를 개발해 공급 물량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주춤하던 집값은 석 달 뒤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는 아직도 서울에 집이 없다.

그의 얘기가 불쑥 떠오른 것은 정부가 발표한 8·25 가계부채 대책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자 정부는 집 공급을 줄이겠다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원인이 집단대출인데, 공급을 줄이면 집단대출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취업이 어렵다니 일자리를 줄이면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겠느냐’와 같은 말로 들린다.

문제는 주택공급 축소가 가계대출 축소로 이어지기 전에 부동산 시장을 지난다는 점이다. 주택공급은 부동산 대책의 영역이다. 공급을 줄인다는데 집값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가계부채 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난 9월 첫째주 부동산114가 집계한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올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유가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대책으로 제시한 주택공급 축소에 따른 가격 상승은 과도한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5년 추 장관의 말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수요과 공급의 법칙’을 아는 한 주택공급을 줄여 가계대출을 잡겠다는 것은 부동산시장에 대한 관료들의 무지이거나 아니면 인위적 부양책에 대한 은폐다. 어느 쪽이든 무능한 정부라는 인식이 박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주택의 과잉공급에 대한 우려였다면 이는 부동산 대책에 담았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집값 폭락이 우려되고, 그러면 부동산시장과 은행이 위험하니, 공급을 줄여 집값을 연착륙시키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나았다는 얘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뒤늦게 “밀어내기식 분양 등 공급 과잉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말했고, 김경환 국토부 2차관은 “대책의 핵심은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높여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라고도 했다. 가계부채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우회적인 부동산정책이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정부의 힘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 시장에 정확한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정책은 되레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다. 8·25 대책이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되레 교란시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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