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질병관리본부는 동물흡입실험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자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측은 서울대 조모 교수 등에게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들은 국내 최고의 독성전문가였다. 연구결과는 “가습기 살균제와 페손상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였다. 이들의 보고서는 정부와 의료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난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는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의 사인에 대해 “유족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해 발생한 병사가 맞다“며 “사망진단서 작성은 주치의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이윤성 교수는 “백씨처럼 두개골 손상이 심하면 외인사가 맞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의대 학생, 전국 의대 학생, 서울대 의대 동문,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외인사”라고 거들면서 의료계는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가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의견이 석연찮다는 점이다. 과연 두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수준과 학자적 양심에 맞춰 행동을 한 것일까.

전문가의 일을 일반인이 알기는 어렵다. 전문가는 석박사까지 수십년간 그것만 팠고, 현장에서도 또 수십년을 보냈다. 그래서 전문가는 권위가 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도 주어진다. 대개는 소득도 일반인보다는 높다. 이런 대접을 해주는 것은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문가가 제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두 사건은 전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문가는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가. 전문가가 가진 지식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어디까지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

몇해 전 택시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널 때의 일이다. 대뜸 택시기사가 말문을 열었다. “제가 지하철 O호선을 지을때 일용직 근로자로 했는데 철근 엄청나게 빼먹었어요. 땅속 일이라 확인할 길이 없으니 마음대로 장난친 거죠. 그래서 저는 그 지하철노선은 안타요.” 며칠전 만난 에어컨 기사는 그런다. “OO아파트는 벽을 뚫어보니 단열재 쓰레기로 채워져 있더라구요. 층간소음이 심하고, 벽에 금도 많이 가 있던데 집값 떨어질까봐 쉬쉬합디다”

과연 토목건축 전문가들은 달랐을까? 국내 건축물을 제대로 설계하고, 원칙대로 시공했을까. 경주와 울산을 엄습한 지진까지 닥치고 보니 그런 의구심은 더 커진다. 때마침 태풍 차바로 2000억원이 넘게 투입된 부산 다대포항과 감천항 방파제 일부가 무너지자 해양수산청은 부실시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대한토목학회에 의뢰했다. 

박사 학위가 똥값이란다. 박사가 너무 많아진 것이 주원인이지만 전문가가 신뢰를 상실한 것도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가’의 가치를 지키려면 전문가들이 먼저 전문가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 서푼 짜리 이익에 눈 멀어 전문가적 양심을 판 적은 없었는가. 그랬다면 지금부터라도 바꾸자.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예비전문가(서울대 의대생)들의 성명서에 가슴 뜨끔했던 선배 전문가라면 말이다.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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