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을 지급하지 않고 미루는 행위인 ‘체불’은 악질 범법행위이다. 체불을 당하는 쪽에서 보면 일을 하거나 물품을 제공하고 돈도 못 받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가정이 파탄 나고, 평생 일군 회사가 망해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체불이 상습·습관적으로 이뤄진다면 일반인이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키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토교통부가 최근 하도급 대금 등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건설업체 3곳과 업체 대표자 명단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상습체불 건설업체 및 대표자 명단 공개는 2014년 11월에서야 비로소 건설산업기본법에 도입됐다. 건설공사 대금 체불로 하도급 및 자재·장비업자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때까지 상습체불 문제가 수없이 발생해 커다란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도입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제86조의4(상습체불건설업자 명단 공표 등)와 동법 시행령 제82조의4(상습체불건설업자의 명단 공표 방법 등)에 따르면 명단공개 대상은 직전연도부터 과거 3년간 건설공사 대금 체불로 2회 이상 제재를 받고 체불액이 3000만원 이상인 건설업체와 그 대표자의 개인정보 등이다. 명단은 관보와 국토부 홈페이지, 건설산업종합정보망(KISCON)에 3년간 공개된다. 또한 시공능력평가 시 3년간 공사실적 평가액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삭감 당하게 된다.

이번에 공개된 3개 업체의 체불액은 모두 51억7000만원에 달한다. 행정제재는 총 6회이다. 애당초 지난 4월 열린 ‘상습체불 건설업자 명단공표 심의위원회’에서는 건설업체 10개사와 대표자 12명이 명단 공개대상자로 선정됐었다. 체불금액은 총 245억6000만원이었다. 명단공개를 앞두고 소명기간에 7개사가 무려 193억9000만원에 이르는 체불액을 서둘러 해소해 나머지 3개 업체만 명단이 공개된 것이다. 명단공개가 심리적 압박을 통해 상습체불을 막는데 그만큼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명단공개 등의 체불 근절 노력으로 2012년 283건이던 행정제재가 지난해 27%나 줄었다고 한다. 결국 상습체불 업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매서운 법적·제도적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크든 작든 모든 기업에게 있어서 자금(돈)은 우리 몸의 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혈액순환이 잘돼야 몸이 건강하듯 자금흐름이 원활해야 기업 활동도 왕성할 수 있다. 특히 영세업체가 많아 자금융통이 쉽지 않은 전문건설업의 특성상 원청사로부터 받는 하도급 대금은 생명줄과 같다. 상습체불은 그 생명줄을 끊는 무자비한 악덕행위이다. 이번 명단 공개가 하도대금 상습체불 근절을 위한 확실한 계기가 돼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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