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석까지 한 자가 나라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검찰 수사나 받고 있는 그런 상황이 너무 참담하고 부끄럽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CJ외압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한 발언이다. 적어도 내 기억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부끄럽다”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부끄럽다’는 양심에 거리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강압을 한게 아니라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쓰는 말로, ‘양심고백’의 다른 표현이다. 다른 말로는 ‘염치(廉恥)’라고도 한다.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한다.

비선실세인 최순실 국정농단에 국민들이 더 경악하는 것은 연루자들이 하나같이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사과한다”고는 했지만 그다지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의혹이 제기됐을 때 혐의자들의 첫 반응은 ‘부인’이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비선 실세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최순실씨의 연설문개입의혹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 아닌데 무슨 확인을 하겠느냐”고 했다. 

압권은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의혹은 잇달아 터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마침내 “죄송하다”며 물러섰다. 과연 이들이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을까. 알고도 다른 말을 했으면 거짓말이고, 정말로 몰랐다면 직무유기다. 어느 쪽이든 제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죄송하다”던 청와대는 공세모드로 돌변했다. “성실하게 검찰조사를 받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고개를 빳빳히 들고 검찰조사실로 향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5%를 밑돌고 100만 명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오는 데는 이같은 무치(無恥)가 큰 몫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무치’로 버티는 사이 경제가 위아래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직 청와대 경제수석이 줄줄이 구속되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사가 중단되면서 경제정책을 책임질 사람이 사라졌다. 보호무역기조 속에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에 대통령은 참가도 하지 못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벼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의 양자회담도 요원하다. 해외투자자들은 한국의 정경유착을 미심쩍게 주목하고 있다. 소비는 얼어붙고 부동산 시장도 이상하다. 그럼에도 청와대에 경제 좀 챙겨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집에 난 불끄기조차 바빠 보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괴물은 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럴 염치는 있는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국정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국정최고책임자가 부끄러워할 이유는 충분하다.

행여 권력자들의 몰염치가 사회로 전염될까 두렵다. 사기를 친 사람이, 부실건축을 한 사람이, 배임을 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최고권력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느냐’는 자괴감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에 근심을 끼쳐 죄송하다“는 부끄러움이다. 끝내 그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상식의 힘과 법적절차를 빌어 단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몰염치와 파렴치의 사회적 전염을 막기 위해서다.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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