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산업의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에는 불합리·불공정한 규정이나 제도가 특히 많다. 갑(甲)질 관행이 다른 어느 산업분야보다 뿌리 깊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장기계속공사 시 하도급자의 계약이행 보증금이 공사가 다 끝날 때까지 오랫동안 묶이게 해놓은 것도 바로 ‘갑에 의한 을 착취’의 한 전형이었다. 

건설공사는 완성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하도급자는 계약이행보증금이 오랫동안 묶이게 되면서 신규계약 시 보증여력 부족으로 추가로 담보를 제공하거나 현금을 예치해야 하는 등 금융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하도급공사가 장기계속계약인 경우 연차별로 계약이 이행되면 차수별로 계약이행보증금을 반환토록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꾸준히 추진해왔으며 드디어 그 결실을 맺게 됐다. 

국회는 지난 1일 본회의를 열고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이 대표 발의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제안이유에 따르면 국가계약법이 적용되는 원사업자의 경우 연차별 계약이 완료되면 당초 계약보증금 중 이행이 완료된 부분의 계약이행 보증효력이 상실돼 당해 계약보증금액을 반환받는다. 이에 반해 수급사업자는 계약이행을 보증할 연차별 계약이 완료된 때 당초 계약이행 보증금 중 이행이 완료된 부분을 반환받지 못하고 있어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계속공사의 경우 총 공사금액이 크므로 계약이행 보증금액도 상당할 수밖에 없어 수급사업자는 ‘돈맥경화’를 겪게 된다. 

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해 권장하는 ‘건설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는 장기계속공사의 경우 연차별로 이행이 완료된 부분에 대해 계약이행보증을 해제토록 하고는 있으나 강제력이 없어 이를 법률로 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도 법률개정에 대한 제안이유라고 적고 있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에게 차별적으로 법률이 적용되고, 공정거래위원회조차 바로 잡지 못하는 불합리·불공정 관행을 당연히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개정 하도급법으로 인해 수급사업자는 보증부담을 크게 덜게 돼 자금여력이 생기고, 보증기관의 경우 리스크 감소에 따른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게 되는 등 전문건설업체와 보증기관이 모두 혜택을 보게 됐다. 또한 ‘원사업자가 발주자로부터 계약이행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조항을 끼워 넣으려는 공정위의 ‘불공정 시도’를 막아냈다는 점에서도 이번 하도급법 개정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만일 법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법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번 하도급법 개정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를 차별한 비정상을 정상화시킨 것이다. 보증마저 차별받는 사회는 아무것도 보증 받을 수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은 크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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