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희망을 가꾸기 위해선 
 낡은 것을 밀어버리고 새것만 
 세우는 개발이 돼선 안 된다 
 지속가능하며 모두가 어울리는 
 인간생태계를 꾸려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는 악의적이다. 이를 재개발에 가까운 현상으로 파악하고 싸움 구경하듯 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재개발과 등치시키면 낙후된 지역에 들어가 그곳의 가치를 상승시켜 놓은 문화, 예술가들의 노력은 실종되게 마련이다. 마을 주민과 함께 벌인 노고로 인해 마을이 살고, 새로운 품격이 생겼음을 논의할 실마리를 없애버리는 셈이다. 악의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변함없는 자세로 다루고, 그에 저항하는 이들을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전국 도심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무한반복의 모습을 띠고 있다.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 개성적 작품을 만들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 탓에 모여든다. 공방이나 워크샵을 하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의 공간이 형성된다. 미디어는 새로운 공간에 주목하고 그곳이 도심의 쉼터 역할을 한다고 띄운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순식간에 ‘핫 플레이스’가 된다. 대자본을 등에 업은 프랜차이즈 업소들이 모여들고 임대료는 상승한다. 높아진 지가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한 문화예술가, 원주민은 그곳을 떠난다. 그곳은 프랜차이즈 상가들로 빼곡한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정체성 없는 공간이 된다. 

나쁜 피가 돌 듯 그런 사건들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촌이 그래서 망가졌고, 홍대, 삼청동, 망원동, 서촌, 북촌, 연남동, 경리단길, 상수동도 그런 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젠 서울을 넘어 지역 곳곳이 그런 일로 앓고 있다. 반발은 당연했고, 주민과 함께 이뤄낸 문화예술가들의 노고를 제대로 인정해달라는 인정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용산 참사가 그랬고, 홍대앞 두리반 지키기가 그랬다. 연예인 건물주와 다투는 모습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런 갈등을 두고 미디어에서는 건물주에게 ‘을질’한다거나 불법 점거한다는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그런 탓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은 긍정적 함의보다는 부정적 함의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다. 

도시는 균질하게 발전하지 않는다. 낙후되는 곳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일부 도시 행정가들은 낙후 지역을 무차별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하지만 그런 일이 결코 도시생태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사회 내에 퍼졌고 정책 전환이 이뤄졌다. 낙후 지역에 인프라를 투자하며 원주민이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펴는 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마을가꾸기 정책, 수원시의 마을르네상스 등이 그런 흐름의 예다. 거기다 가난한 문화예술가들이 낙후된 지역을 자신의 문화자본을 펼칠 거점으로 삼는 공명이 일어나 도시 내 마을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큰 자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세금 투여, 원주민과 문화예술가의 노고가 투여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뤄진 것이다. ‘핫 플레이스’가 되자 찾아온 프랜차이즈, 대기업 가게들은 ‘숟가락’ 올리는 얌체스런 무임 승차자 꼴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주민협의체, 문화예술인 협동조합 등이 잰걸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긍정적으로 돌리려 손을 잡는 바람직한 사례가 늘고 있다. 더 이상 도시가 대자본, 건물주, 지주 중심의 정책을 펴선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판단이 선 탓이다. 신촌이 상가 중심 지역이 되었지만 이미 주민이 떠난 지 오래고, 문화적 색깔, 활기도 없어졌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익혀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구역 지정, 임대료 적정 수준 유지 등의 조례를 만들거나, 건축주로 하여금 안심상가를 제공하는 등의 공공기여를 유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SH공사로 하여금 예술인 주택사업을 벌이게 해 유입 예술인들이 주민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의 성동구에서는 대안상가를 만들어 소형 가게가 공동으로 마켓을 형성하게 돕고 있다. 연남동의 ‘어쩌다 가게’는 협동조합형 가게 건물을 지어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도시 어디에나 다양한 주민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하고, 동네의 색깔을 보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내 동네가 되고,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게 된다. 동네를 동네답게 만드는 사람과 정책도 지지하며 생활 정치를 살린다. 그런 도시와 희망을 가꾸기 위해서는 낡은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것만 세우는 개발이 되어선 안 된다. 지속가능하며 모두가 어울리게 하는 인간 생태계를 꾸리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냉철해야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매서운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