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간 의사표시 합치에 의한 법률행위인 ‘계약’은 공정(公正)이 원칙이다. 당사자 간 관계가 대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등과 공정.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는 당사자 간 종속관계 여부와 그에 따른 협상력의 차이 등으로 인해 계약이 불공정으로 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원도급과 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종속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건설업종에서 ‘계약=불공정’이라는 등식은 ‘갑을(甲乙)관계’처럼 고착화돼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한전문건설협회(회장 신홍균)는 계약 단계에서부터 불공정으로 시작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마침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 화답(和答)했다. 지난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건설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가 바로 그것이다.

전문건설업계는 개정 표준하도급계약서가 그동안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상당부분 개선하고, 건설안전 강화와 근로자 보호 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도 “거래상 지위가 열등한 하도급업체가 원사업자와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거래조건을 공정하게 설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 표준하도급계약서는 역설적으로 여태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개정된 조항들이 대부분 불공정을 크게 줄이거나 없애주는 것들이어서 개정 이전의 불공정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한건설협회까지“불공정한 거래가 해소될 것”이라고 보겠는가.

수급사업자 입장에서 불공정이 크게 개선된 조항은 △추가·변경공사 서면 의무발급 및 대금 증액지급 규정 △공기연장에 따른 하도급대금 조정 규정 △원사업자 안전조치 의무 강화 △원사업자 안전관리비 지급 및 정산 의무 부여 △부당특약 무효화 및 부당특약 비용청구권 부여 △장기계속공사의 하도급계약 이행보증금 연차별 반환 규정 등이다.

△하도급계약 이행보증 보상범위 확대 및 구체화 △수급사업자의 불법 재하도급 방지 및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관리 규정 강화 △수급사업자의 재하도급 금지 관리업무 △수급사업자에 공사 품질유지를 위한 품질관리 의무화 등은 수급사업자의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주는 조항이다. 한마디로 말해 공정한 거래를 통해 원·하도급 상생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공사 품질도 제고하고 안전도 확보하겠다는 미래지향적 다목적 포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건설협회는 4만여 회원사에게 개정 표준하도급계약서 내용을 적극 홍보하고 교육해 활성화되도록 할 계획이다. 아무리 좋은 규정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가 내용을 완벽 숙지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해 자신의 권익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정위도 개정에 만족하지 말고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감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어떤 규정이든 현장 체화(體化)해 완벽하게 활용해야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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