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모래전쟁’이라고 부를 만하다. 남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모래 채취를 놓고 부딪힌 건설업계와 수산업계 얘기다. 부산경남지역의 건설업계는 남해 EEZ에서 모래 100%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지난달 16일부터 이곳에서 모래채취가 중단됐다. 골재채취 재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산업계는 “과도한 골재채취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연근해 어업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모래가 부족하자 레미콘 업체는 공장가동 중단위기에 몰렸다.

부산경남이 쓸 모래는 낙동강변에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그런데 4대강사업이 완료된 뒤 하도안정화에 들어가면서 올 10월까지는 모래 채취가 중단됐다. 환경영향평가까지 거치려면 빨라야 내후년에야 채취가 가능하다. 서해에서 모래를 끌어오는 방법도 있지만 가격이 문제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는 오래전 예견됐다. 2008년 골재채취가 허용된 뒤 매년 어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정부는 땜질식으로 불만을 무마하면서 매년 얼렁뚱땅 허가를 받아왔으니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수산업계의 불만도 들어보면 영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채취된 골재는 2008년 채취량의 3배에 달한다. 63빌딩 18개 분량이다. 당초 부산신항만 공사용으로 골재를 채취했지만 2013년부터 민수용으로도 슬그머니 허용됐다. 그러면서 골재채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생태계 파괴 우려는 가속화됐다. 때마침 지난해 연근해 어업 생산이 92만톤에 불과했다. 30년 전인 1986년(173만톤)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EEZ의 모래톱은 어류들의 서식지면서 산란지다. 골재를 파낼 때 엄청난 부유물질이 발생하고 최대 20m 깊이의 구덩이가 생긴다. 어민들은 남해안 산란지 파괴가 어획량 감소의 주요원인이 됐다고 믿고 있다. 골재채취에 대해 그동안 참았던 어민들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것은 이때문이다.

모래전쟁의 속성은 업계의 이해충돌이다. 그런데 건설업계의 문제로 보면 또다른 문제가 보인다. 자재수급의 지속가능성이다. 그동안 건설업계는 자재를 얼마나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받느냐에 주목했다. 먼저 허가를 얻어 싼 가격으로 자재를 파내 팔아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자재를 수급하는 과정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떨어졌다. 건설업자 뒤에는 환경파괴자라는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건설업에 대한 지속가능성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머잖아 친환경적인 자재수급이 이슈가 될 수 있다. 친환경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건설자재를 가지고 친환경적인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친환경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농산물과 축산물은 유통이 거부된 지 오래다. 친환경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전기를 쓰는 기업들의 생산품에 대한 비정부기구(NGO)의 견재도 본격화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모래공급 중단이 가속화되면 부산경남지역 건설업계 다 죽는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금상태로라면 이해당사자가 많고 산업연관성이 큰 건설업계의 뜻이 관철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원하는 것은 얻게 되지만 그것이 건설업계의 승리로 부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래전쟁을 통해 본의 아니게 ‘건설업=환경파괴’의 이미지가 더 굳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건설업계도 수산업계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절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채취량을 줄이든, 타 지역의 모래를 쓰든 방법이 없진 않을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감안해서라도 한단계 높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는 별게 아니다.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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