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규제공화국’임을 입증하는 숫자가 또 하나 나왔다.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상법개정’을 주제로 열린 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0대 국회가 발의한 법안 587개 중 407개가 기업 규제 법안’이라고 밝혔다. 20대 국회 개원 후 약 230일이 지났으니 하루 2.5개꼴로 발의된 셈인데, 그중 약 70%가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규제 법안이라니 대한민국이 이마에 규제라는 낙인(烙印)이 짙게 찍혀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규제에 짓눌려 숨 쉬는 것조차 벅찬 실정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에는 국무총리실과 행정자치부가 ‘2016년도 규제 개혁 저해행태 및 소극행정에 대한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은 두 가지 대표적 사례.

1. A시의 산지전용허가 업무 담당자는 2015년 12월 산지전용기간 연장허가 신청(30건)에 대해 관련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는 사유 등으로 실제 민원인에게 보완 요청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보완 요청을 한 것처럼 꾸며 처리기한을 부당하게 연장했다. 이에 따라 법정 처리기한이 5일임에도 최소 37일부터 최대 142일까지 민원 처리를 지연시켰다.

2. 국가계약법령은 중소기업 지원책으로 대금지급 기한을 단계적으로 단축해왔다. B진흥원은 약 10년 전에 대금지급 기한이 14일보다 짧게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14일 이내에 지급할 수 있도록 내부지침을 정했다. 실제 대금지급도 최대 93일을 초과해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행정기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이 실태점검에서 지적된 사항은 ‘직권을 남용한 행정처분 등 규제남용 42건, 형식적·관행적 업무처리 등 무사안일 76건, 인·허가 지연 등 처리지연 27건, 과도한 입찰자격 제한 등 부당한 진입규제·비용전가가 33건이나 됐다.

또 기업부담 완화를 위한 규제합리화 23건,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 개선 등 시정조치가 필요한 사항 9건 등 제도개선 사항도 다수 지적됐다. 법령에 근거 없는 주민동의서 요구,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결과에 따른 부당한 인·허가 반려 등 2015년 점검결과와 유사한 지적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규제개혁은 일자리창출 및 경제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더욱 심화된 경제 불황은 우선 규제개혁으로 타개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투자재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공무원이 기업인들에게 일할 분위기만 조성해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권한남용 등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규제 철폐에 가장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 기업 때리기를 부추기고 있으니 어떤 기업인이 사업 의욕을 가질 수 있을까.

박 회장은 “규제개혁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계속 나온 얘기인데 입법부에서 규제법안을 쏟아내면 어떻게 할지, 파급효과와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규제의 장벽에 가로막힌 수많은 기업인들의 피눈물과 한숨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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