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는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비용이다. 특히 고용·산재 보험료는 근로자의 생계와 신체의 안녕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필수불가결의 사회비용이며, 보편적 인권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용·산재 보험료에 대한 회피 또는 늑장 지급 등의 행위는 사회악(惡)이며 반(反)인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만큼 악질적이라는 얘기다.

그 악행-벼룩의 간도 내 먹으려는 듯한-이 건설현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원도급업체들이 추악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면서 근로자들의 안녕과 안전에는 관심도 없고, 하도급업체들의 등골까지 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법을 악용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고 있어 악행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원도급업체들이 고용·산재 보험료를 하도급업체들에게 떠넘기는 근거가 되고 있는 법조항은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제9조이다. 이 조항은 ‘건설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의하여 시행되는 경우에는 그 원수급인을 이 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로 본다’고 적시하고, 부수적으로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단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하수급인을 이 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원도급업체가 사업주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보험료를 지급하는 게 맞다’는 대원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다가 원도급업체가 발주처로부터 보험료를 지급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절차상으로도 원도급업체가 보험료를 제때 지불하는 게 당연하고 옳다.

하지만 현실은 법률과 상반되게 움직이고 있다. 원도급업체들이 법률의 부수규정을 악용해 하도급업체에 ‘하수급인 사업주 승인신청서’를 강압적으로 제출케 해 보험료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하도급업체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료를 지불하는 부담을 안아야만 한다. 여기에다 원·하도급업체간 관계의 수직성에 비춰보면 하도급업체들은 우선 지불한 보험료를 제대로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하도급업체만 원도급업체와 근로자 사이에 끼인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을 받게 되는 꼴이다. 하도급업체의 자금난은 결국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와 노동부는 이미 여러 차례  유권해석을 통해 “원수급인이 고용·산재보험료를 도급금액 산출내역서에 명시하고, 하수급인이 사업주일 경우에는 하수급인에게 보험료를 지급, 신고, 납부토록 해야한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업체에 보험료 납부업무를 위임하고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는 폐단을 미리 인지하고 이를 고치기 위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을 악용하는 악행이 관행처럼 굳어져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법은 악용할 소지가 있으면 이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법의 평등성·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 바로잡지 않는 것, 그것 또한 악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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