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문건설신문] 2년 전 여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갔을 때다. 부산을 떠난 지 6년이 돼 오랜만에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며 여유를 느끼고 싶어 부산지하철 해운대역에서 내렸다. 가는 동안 호젓한 정취를 상상했는데 해운대역 주변 곳곳에서 진행 중인 고층건물 공사로 해수욕장 입구부터 꽉 막혀 불편하고 체한 느낌이었다. 10년 전은 달랐다. 해운대역 주변은 저층 상가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편안함 그 자체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해수욕장 주변에 이르러야 호텔·복합상업시설 등 고층건물이 군데군데 있었다. 수평선을 보며 해수욕장까지 걷는 즐거웠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해운대는 탁 트인 바다와 동백섬 등 천혜의 자연으로 난개발 우려가 상당했다. 걱정했던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부산시는 정치권과 개발업자들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듯 초고층 건물 인허가를 남발했고 해운대해수욕장과 마린시티 주변은 맥락 없고 뜬금없는 개발의 상징으로 변해갔다. 초고층 개발 배후에는 검은 돈과 로비도 있었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초고층 건물을 짓는 엘시티(LCT)사업 시행사의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4억3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한강변 아파트 재건축조합과 서울시의 ‘35층 갈등’을 보며 해운대해수욕장이 떠올랐다. 한강변 아파트 층수 논란은 더 많은 아파트를 분양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재건축조합과 2030플랜에 따라 아파트 높이를 35층 이하로 명문화한 서울시 간 대립에서 기인한다. 서울시는 서울을 둘러싼 산과 한강 등의 경관을 시내에서 두루 보이게 해 도시매력을 배가하는 차원에서 높이 상한을 35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양측 간 전선에서 일단 기세상으로는 서울시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가 최근 주거지역 ‘50층 재건축’ 계획을 사실상 접었고 앞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도 백기를 들었다. 반면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여전히 49층 재건축 안을 고집하며 서울시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은마아파트가 49층을 고수하는 이유는 조합원 분담금을 줄이려는 목적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대지면적이 넓어 큰 평수 아파트를 받고도 환급금을 1억원 가량 받은 잠실주공5단지·반포주공1단지와 달리 은마아파트는 1억~2억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공적 규제를 문제 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해운대해수욕장처럼 한강도 지역주민뿐 아니라 방문객들이 수변의 신선함과 개방감을 함께 향유해야 하는 공공재다. 모든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고층건물에 의해 잠식되면 책임은 지방정부의 몫으로 귀결된다. 특히 35층 상한이 재건축조합의 탐욕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라 이 기준이 무너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해운대해수욕장과 마린시티라는 반면교사가 있지 않은가.

2008~2014년 기간 31층 이상 고층 건물은 503동에서 1319동으로 2.6배 급증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50층 이상 주거용 초고층 건물이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 부동산에 몰빵하는 투자 성향만큼 고층 건물이 급속도로 올라간 셈이다. 인생사나 부동산이나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 개인이든 개발사업자든 대출로 쌓아 올린 ‘주거의 마천루’로 인해 공공의 권리가 침해되고 환경이 훼손되는 걸 언제까지 바라만 봐야 하는가. /한국일보 기자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