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열흘도 안돼 전 정부에서는 보지 못한 다양한 조치들이 쏟아졌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국정교과서는 폐지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기간제 교사들은 순직처리하도록 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10년 이상된 낡은 화력발전소는 다음달 한 달간 가동 중지하고 신고리원전 5, 6호기도 건설을 중단한다고 했다.

물론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해서 모든 조치들이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갈등은 잘 풀리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파고들다 보면 다양한 난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고, 이를 푸는 게 결코 만만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 초기 힘이 막강한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밝혔으니 일련의 조치들은 당분간 힘있게 굴러갈 것이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렇게 막강한 존재였나 새삼 실감도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신생 정부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핵심멤버들이 10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그러니 ‘시즌2’쯤 된다. 문재인 정부의 직제개편과 인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새정부 출범과 터트린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 노련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국민여론을 얻는 방법을 아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차례 집권경험은 그만큼 무섭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주거 정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준비했을 것이고, 실행가능성도 높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먼저 공적임대주택(장기공공임대주택 및 준공공임대주택, 민간건설임대)을 매년 17만호씩 공급하겠다고 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4만호씩 공급하되 30%는 신혼부부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월 30만원 이하로 거주할 수 있는 청년임대주택 5만 가구가 공급되고, 서울 및 5대도시 역세권에는 시세보다 낮은 청년주택 20만 실이 공급된다. 영구임대주택은 저소득 노인, 장애인가구가 우선 거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제와 임대료상한제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제대로만 된다면 서민, 청년, 노인, 자영업자의 주거 및 상가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참여정부가 딱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토지공개념까지 거론했다. 집권 첫해에 종합부동산세 도입, 3주택자 양도세 중과,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의 강력한 조치를 쏟아냈다. 하지만 시중에 넘쳐나는 돈이 문제였다. 9·11 이후 미국의 제로금리를 틈타 몰려온 글로벌 자금에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시행한 행정수도와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설지역의 토지보상금이 풀렸다. 이 돈들이 부동산으로 향하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때마침 판교신도시 분양까지 겹치면서 전국이 투기장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라고 다를 바 없다. 새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은 부양보다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문제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2014년 최경환 경제팀 이후 지속되던 부양정책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부동산 부양정책이 일순간 중단될 경우 시장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하반기 두 차례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정돼 있고, 글로벌 경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내수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지난 몇 해 동안 과도하게 풀려 나온 가계부채 우려까지 겹치면 부동산 시장이 급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경제위기와 서민들의 주거위기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정책시행의 시기를 선택하고 속도를 조절해야한다. 행여 시장의 반발이나 불안이 있다면 달래고 설득해가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섬세한 정책집행이 있을 때 선의가 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5년 뒤 성공한 경제대통령을 꿈꾼다면 J노믹스 경제팀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경제는 종종 정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야속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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