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임금을 알맞은 수준의
임금기준치로 설정하는 순간
최저임금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건설근로자에게는 적정일당보다
근로일수 늘리기가 더 중요하다”

실업자가 많은데 왜 정규직 신입사원의 임금은 내리지 않는가?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면 대기업은 임금 수준을 낮추면서 고용을 늘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임금 수준을 낮추지 않고, 그 덕분에 실업자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취약 계층의 근로자에게 시중임금(시장가격)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적정임금’을 지불하자는 주장은 표현의 차이는 있더라도 지난 대선 후보 대부분의 공통된 공약이었다. 서울시도 오는 7월부터 적정임금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광주시도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지급하자는 정책 대안은 단순히 임금 수준의 향상만이 아니라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고임금 국내 청년층 근로자에게로 되돌리고 숙련도를 향상시켜 직업 매력도를 높이자는 복합적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제3차 건설근로자고용개선기본계획(2015~2019년)에 따르면 2018년부터 기능인력 등급제에 따른 적정임금 수준을 권고할 방침이다.

건설 근로자는 적정한 노동의 대가를 보상받아야 한다. 그래야 노동력의 확대 재생산이 지속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를 포함한 18~19세기 고전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를 노동의 가치에서 찾았다. 노동력이야말로 상품 생산의 원천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상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근로자의 생계가 보장돼야 했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도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서 근로자의 최저생계 수준을 뒷받침해 줄 수 없을 경우에는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시장임금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질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서이다.(효율임금이론) 즉 사용자는 실질임금을 시장임금 수준보다 더 많이 지급함으로써 근로자의 노동 강도를 높일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법정 근로시간 이상으로 일을 한다. 근로자의 충성도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이직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실질임금을 높게 책정한다. 근로자의 이직이 잦으면 그만큼 사용자는 구인과 연수 과정에 거래비용을 더 지출해야 하므로 근로자의 이직을 예방하려고 한다.

또한 사용자는 불성실한 근로자는 해고하고 싶지만 성실한 근로자는 어떻게 해서든 붙들어 두려고 한다. 근로자로서도 실질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보다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할 여건을 가지기 때문에 사용자에게도 유리하다. 결국 근로자는 실업 상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임금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질임금을 획득하는 대가로 사용자가 기대하는 노동력 수준과 강도를 수용하려고 한다.

건설근로자의 일당은 다른 산업 근로자에 비해 대체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에 따르면, 2016년 산업 전체와 제조업의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은 각각 146만9100원과 171만5010원이었고, 건설업의 경우는 192만 7263원이었다. 하지만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월 평균 근로일수를 살펴보면, 산업 전체와 제조업의 경우 각각 15일과 16.9일인 반면에 건설업의 경우는 11.2일로 제조업의 66%에 불과했다. 근로일수가 적으므로 일당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일당은 일일 노동력 투입 대가로 지불하는 인건비이지 정규직 계약 연봉에서 근로일수를 나누어 산출해내는 일일 인건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설근로자는 적정 일당 수준보다 근로일수를 늘이는 것이 더 중요한 관건이다.

적정임금이라고 할 때 ‘적정(適正)’이라는 용어의 뜻이 ‘알맞고 바르다’이므로 자연스럽게 긍정적 파급력을 가진다. 그런데 알맞고 바른 상태나 수준은 최저치의 개념이 아니라 기대치이다. 따라서 적정임금 수준은 최저임금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 당연히 최저임금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적정임금을 알맞은 수준의 임금 기준치로 설정하는 순간에 적정임금은 개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만일 적정임금 수준을 법이나 제도로 규제하고 준수하도록 한다면 이는 은연중에 최저임금 수준이 되고 마는 자충수에 빠지게 된다. 즉 적정임금을 반드시 지급하도록 한다면 최저임금일 수밖에 없는데 최저임금이 ‘알맞고 바른’ 수준이라면 개념과 적용에 혼동이 생기게 된다.

건설근로자에게 근로 대가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철칙은 올바른 의견이다. 하지만 작은 혼동은 큰 혼동을 유발하고 이기주의적인 단견은 집단주의적 갈등과 대립을 야기할 수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최저임금과 시장 임금 수준보다 높은 적정한 실질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노무 전략이 바뀌어야 하고 시장 임금 수준 이상의 노동가치를 창출해내는 근로자의 노동관이 바뀌어야 한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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