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에선 중대 과실이 없으면
원수급인은 책임을 면하지만
건산법에서는 원수급인에게
별다른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하수급인 손배에 연대책임 인정”

하수급인이 고의 또는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타인인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그 하수급인은 제3자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문제는 귀책사유가 없는 원수급인도 책임을 부담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수급인이 신축공사장에서 지하 터파기 및 흙막이 공사를 시행함에 있어서 인근 토지에 지반침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치를 다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해 인근 토지에 지반침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인근 토지 지상 건물에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하수급인이 인근 토지 소유자 등에게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해 귀책사유가 없는 원수급인도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민법 제757조에 의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해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고 다만,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해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책임이 있다. 하수급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하수급인이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원수급인의 경우에는 하수급인에 대한 관계에서 사용자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대법원은 하도급관계를 원칙적으로 도급계약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민법 제756조의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도급인은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해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으나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 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이 고용한 제3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하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1993. 5. 27. 선고 92다48109 판결).” 즉, 원수급인은 하수급인과의 관계에서 하도급 또는 지시에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입증함으로써만 책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건설산업기본법 제44조 제3항에 의하면 수급인은 하수급인이 고의 또는 과실로 하도급 받은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하수급인과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원수급인이 별다른 귀책사유 없이도 하수급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데 대한 연대책임을 인정하는 규정이다.

건산법이 적용되는 건설공사의 하도급계약관계에서 하수급인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 공사의 시공을 조잡하게 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그 하수급인은 물론 거기에 귀책사유가 없는 수급인도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해 시설물이 조잡하게 시공된 때’라 함은, 건축법 등 각종 법령·설계도서·건설관행·건설업자로서의 일반 상식 등에 반해 시공됨으로써 건축물 자체의 안전성을 훼손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것을 뜻한다(대법원 2014. 1. 29. 선고 2011두29069 판결). 결국 하수급인이 인근 토지에 지반침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치를 다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해 인근 토지에 지반침하가 발생한 위 사안에서 법원은 건산법 제44조 제3항의 해석상 귀책사유가 없는 원수급인도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고 있다.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도급계약에 따라 공사가 이루어지지만 하도급, 재하도급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하수급인이 건설공사의 안전성을 훼손함으로 인해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 원수급인이 하수급인의 관리·감독에 책임이 없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을 살피지도 않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책임’을 이유로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이에 의하면 원수급인과 하수급인의 관계는 업무의 수행이라는 내부적 분업의 계약관계만이 도급의 성격을 가지며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하나의 공사주체로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원수급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서 원수급자에게 가혹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안을 따져서 판단해야 할 것이고, 수급인의 하수급인에 대한 사용자책임으로도 충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입법론으로 보았을 때 건산법 제44조 제3항은 문제가 있어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법인 고구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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