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주장하면 그냥
기득권 지키기라 폄하한다
무조건식의 응원도 안 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용인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사검증 청문회를 보는 언론의 시각이다. 문제는 내로남불을 넘어 청문회에서 질문하는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주장하는 그룹도 등장했다. 문자폭탄이나 폭언 등이 SNS를 타고 국민들에게 순식간에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편협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례를 들어보자.

#장면1 : 2014년 12월 미국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에 발생했던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일탈 사건이다. 출발 준비 중 승무원의 땅콩(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문제 삼아 부사장이 비행기를 강제로 회항시키고 수석 승무원을 강제로 하기시켰던 사건이다. 전 국민이 공분했다. 자신의 기분은 중요했지만 함께했던 승객 250명의 기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고발까지 했다. 해당 항공사의 부사장은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는 국민 모두가 공감했다.

#장면2 : 2017년 6월 대통령의 방미 길에서 생긴 일탈 사건이다. 비행 중에 흔히 발생하는 난기류에 기체가 흔들렸다. 당연히 기장은 기내 방송을 통해 좌석에 앉아 안전띠 착용 안내를 했으리라 본다. 이때 기장이 내린 안내는 지시 혹은 명령이다. 당시 대통령은 기자들과 환담 중으로 알려졌다. 안내 방송이나 경호책임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환담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에서 상반된 평가를 내 놓았다.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언론 그룹에서는 ‘특전사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는 평가를 했다. 일탈을 용기로 해석한 것이다. 다른 그룹에서는 ‘기내에서 기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일탈’ 행동으로 해석한 것이다. 

장면1은 내로남불보다 ‘공분과 공감’이 대세였다. 장면2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이 불공평·불공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만약 이런 일이 선진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지 궁금하다. 선진국에도 내로남불에 불공정·불평등이 보편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자기 주관에 따라 판단하는 잣대를 달리한다면 국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은 노력에 의한 대가이기 때문에 절대 내려놓을 수 없다면서 남의 기득권은 내려놔라 주장하면 설득력이 없을 게 뻔하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와 거리 행동을 서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혼란은 좋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문제 될 게 없다 주장한다.  

새 정부 들어 환경과 에너지 정책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환경을 위한 자연, 인간을 위한 자연, 자연과 인간이 공존·공생하는 환경정책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마치 환경과 자원그룹 간의 주장만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 염려스럽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용어 안에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공생’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공존·공생’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 부담이 빠져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국민의 사용 부담이 늘어난다. 만약 환경을 위한 자연 보존이 정답이라면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감내하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주장을 보면 국민에게 어떤 이해득실이 돌아가게 될 것인지를 계량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주장하는 그룹간의 이해만 앞세우는 것 같아 불편하다. 국민들에게 어떤 인내와 비용이 요구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바른 길이다. 

국민을 위한 주장이라지만 정작 국민의 선택을 도와줄 수 있는 어떤 수치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내로남불 식 주장만 팽배하다. 상대가 주장하면 그냥 ‘기득권’ 지키기라 폄하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이 국민에게 어떤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양측의 주장에는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 ‘국민을 위해서’다. 내 국민과 남의 국민이 마치 따로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장하는 그룹이 행동하기 전에 충분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상당한 지식을 축적해야 할 것 같다. 

내로남불을 용인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보편적인 상식에 불공정·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가 돼서도 안 된다. 무조건식의 응원도 안 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용인되는 사회가 돼서도 안 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상품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그 상품으로 인해 대체되는 상품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위해 균형 잃은 수치를 내 놓는 전문가가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띈다. 세상에는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 양지와 음지가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은 사회는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다는 게 역사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아시아 인프라 협력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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