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걱정하던 시대의
건설 마인드로는 맛집을 찾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연명해야 하는 주택이 아니라
살고싶은 주택을 지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유독 건설 산업 관련 비전과 정책 제안과 약속이 빈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재생 사업과 주거복지 강화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건설 산업에 대한 관심도 이해도 낮았다. 건설 생산활동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 때문인지 냉철한 산업 분석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공 건설투자의 확대는 어려워 보인다. 

대선공약과는 별도로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밝힌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09~2015년 사이 23조~26조원 규모였던 SOC 투자가 2016~2020년 사이 연평균 6.0%씩 감소해 2020년에는 18조5000억원 규모로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재정 총수입과 재정 총지출이 각각 연평균 5.0%와 3.5% 증가하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 분야는 연평균 6.8%, 일반 및 지방 행정 분야는 5.4%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 것에 대비해 보면 SOC 투자 지출의 감소 정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업계가 SOC 투자 지출의 축소를 결사반대한다고 시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와 국민이 SOC 투자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 필요한 수단으로써 전통적인 토목사업 시행으로 일축해 버리는 고정관념도 당연히 쇄신해야 하지만 건설업계 스스로가 건설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것이 우선이다. 

건설 산업이 마치 ‘지진아’처럼 대접받는 것은 건설업계가 그동안 물량 확보에 집중하면서 서비스의 질적 발전을 소홀히 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건설 산업은 삶의 품격을 서비스해야 한다. 새로운 건설 수요 창출을 기존 SOC 시장 확대에만 발목을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더라도 이는 평균 개념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될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자연적·사회적 안전 위협, 에너지 변화 등을 읽어내는 그야말로 ‘건설적인’ 건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40년 전에 건축한 공동주택 단지가 더 안전하고 주거환경이 더 쾌적하다면 문제가 있다. 40년 전에 건설한 고속도로가 아직도 그대로 곡선의 산비탈을 따라 울퉁불퉁하게 사람과 물품을 덜컹거리게 하고 있다면 심상치 않다. 시설물 하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 발전 수준에 부응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기대치에 부합하는 수준의 시설물이냐는 것이 관건이다.

끼니를 걱정하던 시대의 건설 마인드와 태도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저 연명해야 하는 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공간의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자연환경에 생채기를 내는 단지 조성이 아니라 투박한 자연환경에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 강만 건너면 되고 산만 통과하면 된다는 생각과 예산으로 교량이나 터널을 건설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후와 자연환경 리스크 및 사회경제적 기대치를 충분히 반영한 성능과 품질의 교량과 터널을 다듬어야 한다. 따라서 건설 서비스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단위 비용과 투자의 증대가 불가피하다. 

물량 위주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건설활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거듭 강조하지만 건설 산업은 이제 사회 시설물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시설물의 껍데기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요소들과 내용물을 바르고 효과적으로 채우고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체계를 생산해내야 한다. 스마트 시설물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다시 선도할 혁신 의지와 실천력을 입증해야 한다.

둘째, 건설 서비스는 사람 중심의 활동이 돼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감을 주고 한 사람이라도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람을 세우는 건설이 돼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는 장사꾼 수준에 머물 것인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기업인이 될 것인지는 건설인의 선택과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달려있다.

셋째, 건설 시설물의 공간적 시대적 연계성을 고려해야 한다. 시설물을 통해 자연과 사회와 개인이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하고 현재가 미래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연계돼야 한다. 시설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넷째, 국민의 기대 수준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건설 산업을 ‘삽질’ 산업이라고 규정하는 한 스스로가 ‘삽질’ 도로에서 ‘삽질’ 사무실에서 ‘삽질’ 주택에서 ‘삽질’ 삶에 머무는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이 건설 산업의 품질 서비스를 소비할 권리와 요구를 과감하게 표출해야 한다.

건설업계가 공사 물량에 매달려서는 승산이 없다. 이는 건설 산업이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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