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의 통근시간은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공공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면
양질의 SOC 투자를 늘려야 한다”

내년도 정부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올해에 비해 19.9% 급감해 당혹감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물론 정치권과 학계에서도 깊은 우려감을 나타내며 재고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이므로 효율성, 공정성, 형평성, 투명성의 원칙이 엄밀하게 적용돼야 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은 집권 정부의 국정 방향에 따라 우선순위와 규모가 바뀔 수 있고, 그래야만 정책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이나 기업과는 달리 정부는 재정 지출의 급격한 변화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재정 지출의 방향과 목적과 파급효과가 납세자인 국민 모두의 이해관계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도 모든 경제활동과 산업활동은 정부 정책에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으므로 경기 활성화는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확대 정책은 재원 마련과 지속가능성 여부가 관건이라 하더라도 호응을 얻고 있다. 복지 지원과 산업활동과의 연관성도 중요한 사안이다. 필자는 올 8월 초 국회 세미나 발표에서 SOC 투자를 ‘공간복지’의 개념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OC에 대한 정부의 편향되고 경직된 관점과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의 영역이 보건의료 지원, 소득 지원, 임대주택 보급, 근로여건 개선 등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복지 지원의 핵심은 공적(사회적) 비용으로 사적 편익(이익)을 충당해 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급의 측면에서 부담해야 할 공적 비용이 한정돼 있다는 점과 수요 측면에서 사적 편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늘이려고 경쟁적인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편향된 인식이나 관점에 따른 정책 추진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SOC 투자는 건설산업의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민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공간복지’를 창출하는 수단이다. 일부 사유재로서의 공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토(영토, 영해, 영공)는 공유재로서의 공간이다. 국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복지 수준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장단거리 대중교통 시설물의 성능과 안전성의 개선, 환경 친화적인 주거환경의 개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시설물 구축 등은 국토 공간의 공공성을 높이고 국민의 생활 복지를 향상시키는 통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 정부의 SOC 투자에 대한 정책 운용 방향은 보완돼야 한다. 

첫째, SOC 시설물의 공급량의 측면만이 아니라 성능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전국 교통망과 지구촌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수준인데 SOC 시설물은 30년 노후화되고 동일한 방식으로 공급된다면 국민의 공간복지에 대한 수요 수준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면 국민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양질의 SOC 시설물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 상태로라면 30년 이상 노후 시설물의 비중이 2026년에 25.8%, 2036년이면 61.5%에 달한다. 특히 30년이 경과된 하수관로는 매년 약 260km씩 증가하고 있으며 도로 함몰 원인의 85%를 차지할 정도이다. 

둘째,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SOC 시설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SOC 투자는 건설 근로자의 일자리 문제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거주, 지역 간 이동, 국토 공간에 대한 접근, 공공 시설물의 사용 등을 통해 사적 비용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공공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투자는 확대돼야 한다. 가장 우선적인 수혜자는 저소득층이다. 고소득층을 위한 공간 서비스는 수익성이 높으므로 시장에서 공급 유인력이 있다. 사적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은 공간 서비스에서 소외될 경우 근로행위나 산업활동에서 생산성이 저하되고 결국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SOC 수준의 부정적 영향은 서민에게 귀속된다. 예를 들어, OECD 회원국들의 평균 통근시간이 28분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두 배가 넘는 58분이다. 우리나라 도로 교통 혼잡비용은 1990년 초에 비해 25년 만에 6배 이상 증가했다. 

셋째, 지속적인 혁신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R&D) 투자비는 2008~2014년 동안 약 2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국토교통 분야 R&D 투자비 비중은 5.7%에서 3.3%로 현저히 감소했다. SOC 시설물의 성능과 품질 향상을 통한 공간복지의 정책 의지와 운용 방향이 잘못된 결과이다.

SOC 투자 확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석기 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삶과 산업이 4차 혁명의 시대에 부합하도록 우리 국민 특히 저소득층의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의 복지 기반을 확충하고 경쟁력 기반을 향상시키는 필수적 통로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한국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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