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의 고요’. 북한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한국도 곧 폭풍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경제에 미국발(發) 악재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어서다.

미국의 통상공세가 나날이 매서워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이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LG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절차에 들어갔다. ITC는 앞서 수입산 태양광전지 및 패널이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고 판정했고, 한국 등 5개국의 페트(PET) 수지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닫혀가는 상황이라 더 불안하다. 올해 2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0.7%)에도 못 미쳤다. 내년 우리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런 때, 정부는 우리 경제에 충분한 숨 구멍을 확보해 주고 있는가. ‘규제일변도’라는 지적을 받으니 딱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급등하는 집값을 잡겠다고 규제책을 담은 8·2부동산대책이 대표적이다. 이 대책이 몰고올 태풍은 내년이 고비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이 2018년 4월부터 시행된다.

당연히 시장을 왜곡하는 투기 세력은 뿌리뽑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작업은 매우 치밀하고 정교해야 한다.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신용정보회사 나이스(NICE)평가정보의 ‘주택담보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된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주택대출 2건 이상 보유자의 평균 연소득은 4403만원으로, 1건(4136만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주택대출 3건 이상 보유자도 연소득은 평균 4528만원에 그쳤고, 대출 11건 이상의 평균 연소득도 5011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무리해 ‘주택 쇼핑’에 나선 기저에는 과거 수년간 정부가 앞장서 조장한 “빚내서 집 사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적폐청산, ‘재조산하’(再造山河)를 위해 새 정부가 지나치게 서두르는 감이 있다. 8·2대책 날 “더 이상 주택시장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고 정부가 호언장담할 때부터 식겁했다. 부동산도 경제의 중요한 축인데 이를 외면하고 어떻게 나라를 운영할지 의문이었다. 이런 정부 기조 때문에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건설투자 증가율을 0.1%로 내다봤다. 지난해 증가율은 10.7%였다. 전국 방방곡곡에 돈을 돌리는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예산안도 올해보다 20.2%나 깎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또 때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인식 변화다. 청와대는 10월10일 브리핑에서 “‘가계부채종합대책’ 추진과정에서 부동산시장 및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하며, 서민·실수요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0월 하순경으로 종합대책 발표를 늦췄다.

작금의 한반도 상황은 6·25 전쟁 이후 최악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미치광이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에 낀 우리는 경제력부터 탄탄히 키워야 한다. 남북 문제든, 한·미통상 문제든 실탄(돈)이 없으면 주도권을 쥘 수 없다. 한국 경제에 성장 깃발을 다시 세우는 의미에서의 ‘징비’(懲毖) 정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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