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입찰 현장설명부터 깜깜해
투찰금액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적정심사 대상인지도 잘 모른다
계약정보가 공개 안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 특단의 처방이필요하다”

건설공사는 도급계약에서부터 출발한다. 하도급공사 계약 또한 일의 완성과 대가지급이라는 전형적인 도급계약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기본인 원·하도급관계가 불공정행위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고질적 불공정 문제해결을 위해 내놓은 자칭타칭 전문가들의 처방약효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하도급 관계에 큰 지병이 든 때문이다. 

정부는 과도한 가격하락을 우려하는 듯하다. 가격하락 방지를 빌미로 원도급공사는 일정비율 이하로 입찰시 낙찰에서 배제된다. 하도급공사 계약은 비록 사인 간의 계약에 해당되지만, 정부는 상생협력 차원에서 건설공사 하도급 심사기준(적정성심사제도)을 시행해 하도급금액 또한 일정수준 이하로 낮아지지 않도록 강제하고 있다. 물론 민간 부문에까지 그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하도급업체로서는 적정성심사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현장 실무를 보면 하도급업체가 적정성심사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도, 발주기관은 원도급업체의 반대의견을 들어 원·하도급 계약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실효성을 살펴볼 적기가 아닐 수 없다. 

건설공사에서 상생협력을 저해하는 출발점은 하도급입찰 현장설명부터다. 원도급업체에 의해 제시되는 각종 불공정특약은 차치하더라도, 얼마짜리 공사인지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도급 입찰업체들은 자신의 투찰금액이 어느 정도의 하도급률에 해당되는지를 알지 못하며, 낙찰 이후에도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규정한 하도급적정성심사 대상이 되는지조차 모른다. 동법 시행령 제34조는 하도급률이 82%(또는 예정가격 대비 60%) 미만인 경우 하도급적정성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하도급계약업체에게 적정성심사가 어떻게 종결됐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무언가 특단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도급공사 입찰 전에는 원도급내역서를, 계약 이후에는 하도급률이 명시된 원·하도급대비표 등의 계약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어차피 하도급공사 낙찰방식은 최저가낙찰제로 이루어지므로 계약정보가 사전에 공개된다고해도 낙찰결과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리 법원은 원·하도급내역서 및 원·하도급대비표에 대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는바(서울고법 2008누32425), 발주기관이 동 계약정보들을 하도급업체에게 공개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위 판결이 준공현장의 사례이기는 하나, 시공 중이라 해도 공개못할 정당한 사유가 추가되지는 않는다. 원도급업체는 하도급입찰자들의 모든 입찰내용을 독점적으로 활용함과 아울러 하도급업체 선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보유하고 있기에, 설령 시공 중에 원도급내역이 알려지더라도 해당 원도급업체의 계약적 지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도급업체들은 여전히 계약관련 정보공개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살펴보면 사실 원도급공사는 설계금액과 설계(공사비)내역서를 알고서 입찰하므로, 그에 따라 낙찰된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입찰업체들에게 계약관련 정보공개가 이루어지는 것을 기피할 명분은 없다. 계약관련 정보공개가 이루어진다면, 하도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당한 하도급대금결정은 자연스럽게 예방될 것이고, 원도급 변경계약내용에 대한 통지 규정(건설산업기본법 제36조) 등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특별한 노력없이도 불공정 하도급행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원도급업체들이 적자시공을 하소연하면서도, 적자의 계약관련 정보공개를 망설인다면 오히려 불신만 쌓인다. 치즈를 옮기는 것은 더욱 아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공공사도 하도급업체 선정 및 계약체결은 여전히 사인 간의 거래이므로 계약관련 정보가 공개된다면 적정성심사는 거치되 계약체결의 자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도급 계약관련 정보가 공개된다면 하도급업체들은 하도급률을 예상하여 입찰할 것이므로, 시공 및 품질 확보에 지장이 없다고 발주자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하도급률과 상관없이 하도급 계약체결을 허용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 발주기관이 원도급업체의 계약정보를 공개하면서도 현행 하도급 심사기준을 강제하는 것은 과잉 경영간섭이거나 관(官)보고용 계약서를 별도 작성하는 이중계약 불법행위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여전히 숙제가 있다. 민자사업과 민간부문이다. 민자사업은 30~40% 정도의 세금이 무상 지원돼 사실상 공공공사와 다르지 않으므로, 공공공사처럼 원도급계약관련 정보공개 및 하도급적정성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민간영역인데, 인·허가권을 보유한 허가권자의 책임성강화가 필요하므로, 조속한 시일내에 세부방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 진전을 기대한다. /건설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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