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기술개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와 문화 등 산업 전반의 체계를
바꾸는 선도적·장기적 투자이다
변혁의 씨앗을 뿌리지 않고는
미래에 성장의 열매를 맛볼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째 건설 산업의 혁신을 외치지만 메아리만 반복돼 왔다. 우리가 건설 산업의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혁신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목소리가 작았던 것도 아니다. 건설 산업 선진화 방안은 관·산·학·연이 10년이 넘도록 함께 궁리를 해왔다. 그렇지만 건설 산업은 여전히 혁신의 대상이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혁신의 횃불을 치켜들었으나 군불을 지피지는 못했다. 왜 그런가? 산업의 혁신이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내 일로 여겼다하더라도 오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환보직의 공공 발주기관 공무원에게는 더욱 그렇다. 

건설 산업의 혁신은 엔지니어링과 시공 기술력의 개발 문제만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막연한 길 건너편 풍경만도 아니다. 건설 산업의 모든 그림자가 대상이다. 입·낙찰 및 계약 제도와 법체계, 설계 시공 방식, 인력 활용과 노동생산성 향상 방식, 창의적인 건설서비스 개발, 여러 활동주체의 협업 방식, 기업경영 혁신이나 산업융합 방식, 건설문화 등 구석구석 새롭게 개조하지 않으면 건설 산업은 ‘천덕꾸러기’의 고정관념에서 헤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혁신은 씨앗으로 심어야 한다. 우여곡절의 기다림과 리스크 없이 꽃이 활짝 핀 혁신의 결실을 수월하게 배달받으면 좋겠지만 부당한 과욕이다. 사춘기와 입시 뒷바라지를 부담할 필요 없이 명문 대학에 입학한 청년을 입양하겠다는 심보와 같다. 씨앗은 심겨질 때에는 보잘 것 없으나 새싹이 돋고 단단한 줄기가 뻗어 오르고 꽃이 피면 내재된 본질적 가치를 발현한다. 앞마당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려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심고 가꾸어야 한다.

이제 건설 산업에도 혁신의 씨앗을 절실하게 파종하는 인큐베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일에도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쉽게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 자본도 필요하고 창의적 발상과 전략적 판단을 주도할 인력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심리적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구조적 위기의 심연으로 침몰하고 있는 우리 건설 산업이 치열하고 지속적인 ‘혁신의 파종’을 하지 않고서는 생산 역량과 경쟁력의 상대적 약화를 되돌릴 가능성이 없다. 일할 사람이 없는데 산업이 있을 수 없고, 발전이 없는데 투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향성을 정했으면 나아가야 한다.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 여정이더라도 돌파해야 한다. 

혁신 인큐베이터는 선도적 도전이고 장기적 투자이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추진력이 필요하다.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산업 차원에서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추진하되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정부와 공기업은 사업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고 협회와 업체와 학계와 연구기관은 실질적으로 책임성 있는 창의적 추진 주체가 돼야 한다. 둘째, 이에 대해 건설 산업 혁신 인큐베이터 사업을 전담할 공익 재단법인을 설립해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셋째, 건설 산업 전반에 걸쳐 혁신 코드를 재발굴해야 한다. 작업 현장의 구체적 혁신사례 발굴에서부터 산업 생산체계의 혁신적인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혁신 동인을 찾아내고 확산시켜야 한다. 넷째, 5%, 10%의 성공 가능성에 투자해야 한다. 혁신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성공할 경우에는 산업에 미치는 파급영향이 크므로 단기 수익성이 아니라 장기 기대효과(외부 경제효과)를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 혁신 인큐베이터 사업은 청년 인력을 양성하는 건설 산업 스타트업(start-up)의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건설 산업의 구조적인 중층 하도급 생산 방식을 혁신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건설 스타트업에서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혁신 인큐베이터 사업의 무임승차를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아무도 혁신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정부는 시장의 경쟁 질서를 내세우며 산업의 혁신을 업체의 몫으로 떠넘겨왔고 업체는 당장 일용할 양식 걱정이 태산이어서 내일의 혁신을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국민은 최종 수요자임에도 불구하고 건설 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세의 물길을 돌려야 한다. 건설 산업 혁신 인큐베이터는 발주자와 업체(경영자와 근로자)와 수요자가 공동의 위기와 책임을 공유하며 변혁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혁신의 열매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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