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거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가치와 첨단기술이 다가오고 있다
건설산업도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며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연말 누구나처럼 모임이 많았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분야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았다. 그런데 아쉽게 느꼈던 하나가 있었다. 건설과는 상관없는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운데 건설에 대한 인식이 예와 다름없이 그리 상큼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건설산업은 뭔가 전근대적이고 투명하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25여년 전 연이은 대형부실사고 이후 정부나 건설업계에서 얼마나 혁신을 부르짖으며 온갖 변신의 노력을 해왔었던가.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지진, 화재, 타워크레인 전도 사고들로 드러난 불량건설의 민낯이 더욱 그러한 인상을 더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건설산업이 신선한 이미지로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는 걸까?

새해를 맞아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올해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실질적인 첫해이다. 정부는 경제정책 3대 전략으로 일자리?소득, 혁신성장, 공정 경제를 제시했다. 사업성 프로젝트로 도시재생뉴딜사업 개시와 SOC투자를 좀 더 늘리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정책방향의 키워드와 프로젝트는 묘하게도 지난해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차기정부에 제안했던 건설정책과제의 3대 방향 그리고 경제성장 견인 프로젝트와 같다. 이는 이제는 거시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나 한 부문 산업에 불과하지만 건설산업이 처한 환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지금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사회적 가치와 첨단기술이 다가오고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공고히 구별돼 오던 산업 간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건설산업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슬기롭게 대응하며 그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쉬운 접근을 위해 두 가지 단순화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변화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대응이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서도 핵심전략으로 제시된 것처럼 건설부문에서도 제대로 된 일자리와 소득이 보장되고, 공정한 시장규칙이 작동되도록 해나가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 대부분이 이구동성으로 미해결 문제의 주된 원인을 불법·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이 완전히 근절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원도급부터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원천일 수 있다. 헐값으로 공사를 맡은 원도급업체는 각종 비용이나 위험을 하도급업체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려고 한다. 이는 고스란히 공사의 품질과 안전은 물론 일선 현장 근로자의 소득에 영향을 준다. 해결책은 원도급이든 하도급이든 결국 제값받기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는 건설공사 말단 현장까지 정당한 비용이 배분되도록 하는 건설 프로세스와 입찰 제도를 제대로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원도급과 하도급은 물론 중간재 생산과 관련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들 간에 공정한 거래관계가 형성되도록 하는 사회적 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는 단지 건설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경제와 사회적 가치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건설업계는 물론 정부와 건설 활동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 모두가 나설 일이다.

두 번째로, 급격히 발전하는 첨단기술에 대한 대응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일컫는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으로 대변되는 첨단기술은 과거와는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유형의 기술이다. 그 속도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산업 간 경계를 허물 정도로 그 파급력 또한 대단하다. 건설산업에서도 분명 새로운 경계를 요구하고 있다. 누구는 4차 산업혁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며 칠면조 현상과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아무 준비 없이 안락하게 살쪄온 칠면조가 한 순간 추수감사절의 제물로 변해버리는 신세와 같은 기업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건설산업은 태생적으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산업이다. 현재의 기술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첨단기술을 활용할 여지를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정부도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지원에 나서야겠지만, 당사자인 기업이 한 발 앞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결국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융합할 경우 기존의 건설시장을 넘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복합적으로 융합된 다기능을 가진 상품시장으로 변하게 될 건설시장에서 중소 전문건설업체 입장에서도 소자본으로 강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초에 지인이 사자성어로 된 서예작품을 보내주셨다. ‘용여득운(龍如得雲)‘이다. 황금개해를 맞아 용이 구름을 얻듯이 좋은 기회를 얻어 그동안 이루고자 했던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라는 뜻이다. 이 기운을 빌어 오랫동안 제대로 풀리지 못했던 건설산업의 새로운 정체성 정립이 올해 술술 풀려지기를 희망해 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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